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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법무장관 자격없다

Posted May. 22, 200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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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국민을 무엇으로 아는가. 국민의 편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책임져야 할 법무부장관이 정권재창출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충성 메모를 남겼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안동수() 신임 법무장관은 자격이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안 장관이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서울 서초을지구당측이 21일 장관 취임식 직전에 서울지검 기자실로 보냈다는 취임사 초고()는 온통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뿐이다. 대통령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는 표현이 두 차례나 나온다.

안 장관이 문제의 문건에서 정권재창출을 강조하며 거듭 충성을 다짐한 것은 오직 대통령만 쳐다보고 일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농단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평소 인권변호사로 자처해온 그가 봉건 왕조시대를 연상케 하는 태산같은 성은() 운운한 것도 양식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안 장관측은 안 장관이 직접 문제의 글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동료 변호사가 안 장관의 부탁을 받고 취임사 초안을 써 지구당사무실에 넘긴 것을 여직원이 그대로 타이핑해 기자실에 전달했다는 설명이다. 안 장관은 문제의 문건을 보지도 못했고 실제 취임식에선 법무부가 마련한 취임사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당 사무실 관계자들은 안 장관이 21일 오후 직접 컴퓨터로 문건을 작성해 출력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들이 21일에는 한결같이 안 장관이 문건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가 문제가 커지자 하루 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을 바꾼 것이 오히려 석연찮은 대목이다.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이 문건은 안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할 말을 미리 원고로 작성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안 장관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이는 더더욱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설사 안 장관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사무실에서 문제의 문건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동료 변호사도 안 장관의 평소 소신을 내가 작성했다고 해명했다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안 장관의 충성서약 파문은 해프닝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안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법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