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대사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일(1896년 4월7일)에 맞춰 제정한 신문의 날 이 마흔 다섯돌을 맞았다. 신문이 자체 기념일을 가진 지 어느덧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 그날을 맞은 우리 심정은 착잡하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기에 앞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무거움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선택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정부는 집권 3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정부 에서 강한 정부로 돌아섰다. 이는 본질적으로 김 정부의 무게 중심이 국리민복()에서 정권재창출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권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리민복이 우선이다. 정권재창출은 바른 정치의 결과물일 뿐이다. 지역정파간 야합과 힘의 정치로 정권재창출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계층간 지역간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의 통합된 에너지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의 목표가 권력유지라는 수단에 매몰되면 그 사회구성원의 갈등과 반목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혁 대 반()개혁, 수구와 진보, 우리 편 너희 편 등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양분화를 강요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의 언론환경도 그러하다. 신문이 친여() 반여()로 구분되는 가운데 방송이 신문을 공격하고, 신문이 다른 신문을 비난하고 매도한다. 언론개혁을 빌미로 이 정부는 말과 행동이 다르게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언론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민간위원들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듯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제 부활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개혁의 미명하에 언론자유를 속박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나 권력의 자의에 의한 비민주적 방식으로 몰아가는 언론개혁은 허구일 뿐이다. 더구나 언로()를 통제하고 건전한 비판마저 봉쇄해서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이를 획책하거나 기도하는 어떤 권력도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고 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신문의 절대적 의무라 할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권력에 잘못과 위험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독자인 국민이 있는 한 그 역할을 방기()할 수 없다. 신문의 날에 하는 우리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