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민()론을 주장한다. 운동권의 민중론으로는 한국의 민주화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중산층과 민중을 결합한 중민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근대화의 실패로 인해 빈곤과 소외가 가중된 무산층(민중)이 이끈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성공으로 형성된 중산층이 개혁을 지향했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논리다. 근대화를 성공으로 본 것은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전제한다.
한 교수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이승만 묘역을 참해한 자리에서 이승만을 국부()로 언급했다가 억지에 가까운 논란에 휩싸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것은 뉴라이트 사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상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식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건국이 아니라면 임시정부 수립은 더욱 건국이 아니다. 망명정부는 원래 있던 정부가 옮겨간 것이지만 임시정부는 정부가 생기기 전 단계를 말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건국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건국되지도 않았다는 이상한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은 한 교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어제 김구 묘역도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에 합류하거나 협력한 박헌영 김원봉 여운형과는 달랐다. 김구의 남북통일 의지는 고귀한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김구 묘역 참배를 계획했으면 모르되 예정에 없던 참배를 부랴부랴 끼워 넣는 모습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이 한 강연에서 영화 동막골에 대해 국방군과 인민군이 힘을 합쳐 미군과 싸우는 내용을 보면서 시대정신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질겁한 적이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공부에 빠져들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인중 사망 혹은 질환자를 뺀 26명 가운데 북으로 간 김원봉 등 6명,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 등 3명을 빼고 나머지는 대한민국 정부에 계승됐다는 사실 정도는 안 의원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