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7KB금융그룹)는 대회 마지막 날 흰색 옷을 즐겨 입는다. 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노스텍사스 슛아웃 최종 4라운드를 앞두고는 하얀색 티셔츠와 치마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옷차림은 지난달 롯데챔피언십에서 김세영에게 역전패를 당할 때 입었던 것과 똑같았기 때문. 당시 박인비는 우승을 눈앞에 뒀다 김세영이 칩인 파와 샷이글을 잇따라 잡으면서 연장전 끝에 패했었다. 의상 코디를 놓고 망설였던 박인비는 패했을 때 그 차림 그대로 선택했다. 이 결정에 대해 박인비는 내가 못해서 진 게 아니고 김세영에게 행운이 따른 것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입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 옷을 입지 못할 것 같았다. 징크스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은 세계 랭킹 2위 박인비는 이날 미국 텍사스 주 어빙의 라스콜리나스CC(파71)에서 끝난 4라운드에서 6타를 줄여 합계 15언더파 269타로 2년 만에 다시 이 대회 정상에 복귀했다. 공동 선두로 출발해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해 승리를 따낸 박인비는 김세영, 리디아 고에 이어 세 번째로 시즌 2승째이자 자신의 통산 14승째를 거뒀다. 박희영과 크리스티 커를 3타 차로 따돌린 완승이었다.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2승 이상을 거둔 박인비는 골프란 게 한두 해 반짝거려서는 안 된다. 일관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 올 시즌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게 최고 목표라고 했다.
이날 94.4%의 그린 적중률을 기록한 박인비는 새롭게 들고 나온 퍼터(오디세이 투볼)와 찰떡궁합을 보였고 퍼트 수도 28개로 막으며 타수를 줄여 나갔다. 19만5000달러(약 2억5000만 원)를 받아 상금 랭킹을 4위에서 2위로 끌어올렸다.
박인비의 우승으로 한국(계) 선수는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올 시즌 11개 대회에서 9승을 합작했다. 박인비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출전 자격이 걸린 랭킹 포인트 확보를 위해 한국 선수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코리안 강세의 이유를 분석했다.
이번 대회에서 2라운드 연속 컷 탈락 위기를 넘긴 세계 1위 리디아 고는 공동 41위(이븐파 284타)로 마쳤다. 리디아 고는 6241달러(약 673만 원)의 상금을 당초 공언한 대로 네팔 지진 피해 돕기에 기부할 수 있게 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