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성희롱의 갑을관계

Posted May. 18, 2013 08:16   

中文

지난 일주일 온 나라가 윤창중 사태로 들끓었다. 대통령 방미를 수행했던 청와대 대변인의 추행과 급거 귀국은 이 나라 수뇌부가 보여 준 한 편의 저질 드라마였다. 대통령의 바쁜 일정을 보좌하기에도 바쁠 시간에 교포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잡았고, 새벽에 알몸으로 인턴 여학생을 호텔방으로 부른 것을 어찌 제정신이라 볼 것인가.

국민은 시쳇말로 멘붕 상태다. 사태를 확대시킨 것도 윤창중 씨였다. 그가 자청한 기자회견은 후안무치()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격려하면서 허리를 툭 쳤을 뿐이다. 편의를 위해 방 열쇠를 주었는데 새벽에 찾아와서 호통 쳐 보냈다는 그의 말을 믿어 주고 싶었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을 수행한 대변인이 미치지 않고는 어린 여학생을 성추행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가 청와대에서 자필 서명한 진술 내용이 알려지고, 기자들의 후속 취재로 그가 뻔뻔스럽게 한 거짓말은 전부 들통 났다.

그가 한 거짓말들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피해 여학생의 주장과 달리 그는 유독 허리를 강조했다. 그건 미국 연방법의 성범죄 기준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준비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 법은 성기와 가슴, 엉덩이를 직접 또는 옷 위로 만지는 것을 성적인 접촉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처벌을 피할 방편으로 허리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추행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이름과 명예를 걸고 맹세했기에, 엉덩이를 만지고 호텔 방에 벌거벗은 몸으로 있었다는 걸 자인한 진술만으로도 그는 어떤 비난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런데 잘못했다고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법률 조언까지 받아서 대응 방안을 정해 놓고 문화적 차이로 일어난 해프닝으로 몰아가며 피해 여학생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기자회견까지 자청하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욱이 피해 여학생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새벽에 호텔방으로 찾아온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마치 성범죄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2차 피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 같아 여성으로서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성추행 사건이나 성희롱 사건은 특히 남성의 우월적 지배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논란이 된 갑을관계가 성 범죄 영역에서 드러난 것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직장에서 남성 상사들이 여성인 부하 직원들을 술을 핑계로 괴롭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의 풍토에도 부분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실 그런 지적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한국여성민우회가 2012년 여성노동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상담 중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가장 많고, 이 중 사업주나 상사에 의한 성희롱이 대부분이다. 특히 계약직과 파견직 여성 피해 사례가 제일 많았다. 채용면접 과정에서 남성 면접관들이 여성 구직자들을 희롱하는 경우가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결국은 윤창중 사건도 갑인 윤창중이 술을 마시자고 하면 쉽게 거절하기 힘든 을의 처지인 인턴 여학생의 지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더구나 고국의 대통령 일정을 돕겠다고 자원한 애국심과 의무감, 그리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분이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피해 여성이 늦은 시간 술을 마시도록 하였을 것이다. 윤창중이 호텔방으로 오라고 했을 때, 피해 여성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욕설을 하며 우월적 지배자인 갑의 횡포를 극대화한 순간 그녀는 이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 지적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우리 갑을관계의 정곡을 너무나 정확히 찔러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갑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성희롱의 성립 여부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기준은 사실 자의적인 측면이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와 같은 법 시행규칙 제2조는 직장 내 성희롱을 규정하면서 피해자의 주관적인 사정을 최우선적인 고려 대상으로 하고 있고, 대법원 역시 피해자 본인의 주관적 성적 수치심 내지 거부감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가해자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행위자가 굉장히 매력적인 갑일 경우 피해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죄 성립 여부가 달라지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 경우든 갑을관계에서의 갑의 부당한 횡포와 우월적 지위의 남용은 근절되어야 한다. 기업 간 거래와 마찬가지로 성범죄의 영역에서도 갑의 부당한 요구를 을이 감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갑의 횡포를 방지한다는 논리로서 당사자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사 결정의 문제마저도 왜곡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갑을관계의 문제가 사회적 평등만을 강조하는 논리로 악용된다면 이 역시 우리의 경계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