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자회담 213합의에 따른 영변 핵시설 폐쇄 조치의 이행 시한(14일)을 넘기면서 미국은 위성 등을 동원해 영변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세밀히 포착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이 핵시설 폐쇄 준비작업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파악한 것도 이를 통해서다.
북핵 게임의 메인 배틀 필드(주 전선)인 영변에선 이 지역을 감시하는 미국과 이를 피하려는 북한 사이에 21년째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1986년 1월 영변 핵시설을 가동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숨바꼭질은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북한이 미국의 감시를 역이용하려는 시도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떻게 보나?=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인 지난해 7월. 미국은 위장막을 씌운 트레일러에 실린 대포동 2호 미사일이 남포시 잠진 군수공장을 떠나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로 옮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위성인 키홀(KH) 12호를 통해서다. 평상시 600km의 고도를 유지하는 이 위성은 150km까지 고도를 낮추면 해상도 15cm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걸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도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현재 미국은 KH 11호와 12호 등 2대의 군사위성으로 북한 지역을 집중감시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5, 6차례 찰영하지만 특이동향이 감지될 경우 24시간 밀착감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원자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계속 나올 경우엔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는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또 핵시설 주변의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은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는 단서가 된다.
북한의 역공=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미국의 밀착마크를 북한이 역이용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2002년 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하자 북한은 영변 핵시설 가동이 중단됐다는 신호를 보내 긴장을 고조시켰다.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추가 추출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원자로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감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북한은 월동 장비의 가동을 통해 수증기 발생을 최대한으로 늘려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는 것처럼 꾸민 뒤 은밀히 플루토늄 추출 작업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수증기 분출만 놓고선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월동장비의 가동인지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정보 당국은 자료의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상도 높은 사진에 더해 풍부한 배경지식, 통신정보, 상황정보, 휴민트(사람을 통한 정보)가 있어야 종합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최근 영변에서 포착된 특이활동만 해도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국가정보원 측은 외부손님들이 오니까 청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려는 움직임 같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213합의 불이행에 대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해 의도적인 쇼를 하는 것일 뿐 실제 핵시설 폐쇄 준비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있다.
하태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