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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오늘밤도 묵묵히 철책 앞에 선다

Posted December. 30, 2005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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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탄약 이상 무, 초전박살.

27일 밤 강원 철원군 육군 모 사단 예하 최전방부대의 한 소초. 소총과 실탄으로 무장한 장병들의 함성이 얼어붙은 밤하늘을 흔들었다.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18도. 그러나 휘몰아치는 강풍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 25도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추위였지만 소초에서 수십 m 떨어진 비무장지대(DMZ) 철책 경계근무에 투입된 장병들의 모습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철책 너머 DMZ를 예리한 눈초리로 감시하던 함성우(22) 일병은 여기서 군사분계선까지는 2km에 불과하다며 야간경계 때는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적의 침투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군은 총기난사 사건, 훈련소 인분 사건 등 잇단 악재로 곤욕을 치렀다. 사회 일각에선 시대적 변화에 뒤처진 군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군대는 갈 곳이 못 된다는 혐군()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장병들은 용광로 같은 젊음으로 한파와 맞서며 묵묵히 휴전선 155마일의 철책을 지키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지시 불이행 시 발포라는 경고문과 정적을 깨며 가끔씩 철책 너머로 들려오는 북한군의 포성, DMZ 내 야생동물이 밟은 지뢰 폭발음은 이곳이 남북 대치의 최전선임을 일깨웠다.

소대장 김효은(25) 소위는 철책 경계에는 명절 휴일이 없고, 상황이 발생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내 부모 형제를 최전선에서 지킨다는 각오로 부대원들이 똘똘 뭉쳐 있다고 말했다.

과거 최전방부대는 열악한 근무여건과 구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병영 현대화 작업과 함께 군이 과거의 폐습 근절에 나선 최근 몇 년 사이 병영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부터 현대식으로 건립되고 있는 최전방 소초들은 냉온방 장치와 널찍한 침대형 내무실, 수세식 화장실, 위생적인 식당, 위성방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장욱(23) 병장은 구형 막사에서는 침상형 내무실에서 칼잠을 자고, 한겨울에도 찬물로 머리를 감아야 했지만 이젠 온수로 샤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세대 장병들의 입맛에 맞춰 돈가스 돼지갈비 삼계탕 스파게티가 제공되는 등 식단도 다양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후임병이 내무실에서 TV 리모컨을 만지거나 웃는 모습은 꿈도 못 꿨지만 요즘은 일과 후엔 최대한 개인 활동이 보장된다. 식사를 마친 장병들은 독서, 체력단련, 게임을 하거나 소초에 별도로 설치된 전화로 가족 등과 통화를 하는 등 자유시간을 보낸다.

한 선임병은 일병 때까지 구타가 있었지만 이젠 거의 사라졌다며 얼마 전 친구로부터 선임병으로 군림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편지를 받고 후임병에게 보여주며 함께 웃었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6시 반 오전점호.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을 응용한 병영무()로 몸을 푼 장병들이 포효하듯 힘차게 군가를 부르며 캄캄한 연병장을 내달렸다.

장병들이 최전방의 새벽을 깨우는 동안 둘러본 내무실 한쪽 구석에서 액자 속의 시구가 눈에 띄었다. 장병들이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마련해 놓은 듯했다.

밤마다 네 하루를 살펴보라그리고 너의 사랑하는 자를, 너의 어머니를, 유년시절을 생각하라너는 때 묻지 않은 자가 되고 새날을 밝은 마음으로, 영웅으로, 승리자로 시작할 것이다.(밤마다 네 하루를 살펴보라, 헤르만 헤세)



윤상호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