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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은 하늘에 계신 선생님

Posted November. 22, 20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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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 공연을 당신께 바칩니다.

초겨울의 추위를 녹여 줄 훈훈한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국 연극계의 거두, 극작가 이근삼씨의 1주기(28일)를 앞두고 고인이 몸담았던 서강대 제자들이 추모 연극을 마련한 것.

2528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무료 공연되는 유랑극단은 제자인 김용수 교수(신문방송학)가 연출을 맡고 신방과 학생들과 언론대학원 공연 전공 대학원생 등 35명이 배우와 스태프로 자원한 작품이다.

18일 오후 9시 메리홀을 찾았을 때 이들은 연습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성우, 연극기획자가 포함된 공연 전공 대학원생 일부를 제외하고는 난생 처음 연극무대에 서는 학생들이 대부분. 대사를 읊는 목소리는 어설펐고 걸음걸이는 서툴렀다. 하지만 꼬박 한 달째 일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을 반납한 채 연습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진지한 눈빛과 열정은 어느 전문배우 못지않았다.

김 교수는 선생님은 평생 100여편의 희곡을 남기셨고 가난한 연극과 연극인을 유난히 아끼셨던 분이라며 추모작으로 한국 연극의 현실을 보여 주는 유랑극단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아 골랐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교내에 추모공연 참가자 모집공고를 낸 것은 9월 초. 참가자 35명 중 고인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는 김 교수뿐이다. 고인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극을 배운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장소정씨(20신방과 2년)는 선생님께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우리 연극에 큰 자취를 남긴 분의 추모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1000만원. 고인을 기억하는 동문들에게 십시일반() 부탁을 했고 학생들이 발로 뛰어 지금까지 700여만원을 걷었다. 학교에서는 새로 단장한 메리홀을 내줬다.

연극의 꿈을 수레에 싣고 앞으로 전진했어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목표를 향해 굴러가고, 힘에 겨우면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꿈이 실린 수레를 놓친 적은 없었죠. 이것이 바로 우리 연극의 인생이었던 겁니다.

고인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마지막 대사와 함께 연습이 끝났다. 배우들이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인사했다. 그러나 한가운데, 주연 배우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순간, 배우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며 손을 무대 뒤 스크린을 향해 내뻗었다. 배우들의 박수 속에서 스크린 가득, 고인의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목 오후 7시반, 금 토 오후 3시 7시반, 일 오후 3시. 011-9891-0126



강수진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