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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Posted October. 08, 200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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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매튜 배틀스 지음 강미경 옮김

296쪽 1만5000원 넥서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년)는 도서관을 우주에 비유했다. 끝없이 늘어선 열람실, 똑같이 생긴 방들과 복도의 거울들. 세상이 비밀스러운 의미로 가득 차 있으므로 그 의미들만 모아두어도 또 하나의 상응하는 세상이 된다는 뜻이었을까.

평생 사서로 산 그는 만년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 된 직후 시력을 잃었다. 눈먼 보르헤스가 서가를 더듬거리다 발견한 마지막 역설은 책이란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날수록 잘 보존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희귀본 도서관인 휴턴도서관 사서이자 하버드도서관 회보 편집자인 저자는 문자의 수집과 보존을 향한 인간의 열망, 그리고 책과 도서관의 운명을 이 책에 꼼꼼히 담아냈다.

불꽃으로 타오르다

정신을 일깨우는 불을 지피도록 운명지어진 책. 그러나 현실의 불꽃 속에서 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아랍 세력에 의해 파괴된 뒤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은 목욕탕에 불쏘시개로 보내졌다. 전설에 따르면 이 책들로 목욕탕 아궁이를 6개월이나 땔 수 있었다고 한다.

나치는 12년 집권기간 중 1억권의 책을 불태웠다. 마르크스는 민족의 화합을, 프로이트는 인간의 고귀함을, 레마르크는 민족정신의 무장을 각각 저해한다는 이유로 분서() 목록에 올랐다.

책에 가해지는 야만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1992년 세르비아의 군사지도자들은 보스니아 국립대 도서관과 동방연구소를 공격했다. 터키 지배 시대의 수많은 문서들이 소실됐다.

책 태우기가 반드시 문화의 파괴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18세기까지도 고대의 수많은 파피루스와 양피지 문서들이 그슬린 채 도서관의 폐허에 널려 있었다. 이탈리아의 사제 피아지오가 이 책숯들을 개봉해 타지 않은 부분을 읽어내는 방법을 발명했다. 덕분에, 불타지 않았다면 뿔뿔이 흩어졌을 수많은 고전 지식이 판독돼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다.

진짜 책벌레, 사서들의 역사

오늘날에도 분류목록 작성에 필요한 사소한 표기 문제로 밤을 새우며 설전을 벌이는 이들이 사서다. 한밤중 서가 사이를 거닐며 이 중 어딘가에 마법사의 돌과 관련된 비밀이 씌어 있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이들도 사서들이다.

19세기 영국에는 사서 활동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이가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안토니오 파니치였다. 급진 결사 활동 때문에 망명객이 된 그는 영국 국립도서관 사서로 취직해 새 도서목록을 만들었다. 오늘날 인터넷처럼 책 사이의 링크 개념을 도입하는 작업이었다.

독자들이 직접 카드를 기입한 뒤 책을 대출받도록 만든 그의 방식에 불만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 청문회가 열리자 수필가 칼라일이 도움을 많이 주는 방식이라며 그를 변호했다. 파니치는 현실정치가 아닌 도서관의 혁명가로 1950년대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듀이 십진분류법으로 유명한 멜빌 듀이는 분류법 외에 사서학교와 사서용 집기회사를 설립하기도 한 사서들의 신이었다. 1860년대에 시작된 카드 분류법은 윌리엄 코스웰이 하버드대 도서목록을 책별로 오려내 새로 분류한 데서 비롯됐다.

지배자에 의한만인을 위한

처음 도서관은 권력자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 지어졌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상인에서 군주로 올라서는 데는 도서관 건립이 큰 역할을 했다. 희귀본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면서 시민을 위한 자선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도 있으니 수지맞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 후 신간목록이 급증하자 도서관은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됐다. 통치자들이 도서관을 통해 규범을 전파하고자 했지만 민중은 지식욕을 충족시켜 지배자들과 지적으로 동등해지고자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대출 전용 도서관이 유행하자 자본가들은 하층민이 지식으로 무장하면 사회가 망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을 설득하는 데는 벤담과 밀, 디킨스 등 저술가들의 역할이 컸다. 디킨스는 도서관이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주는 관계임을 알려주는 교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문자에 의한 민중교화의 가장 위대한 사건은 1446년 오늘 조선에서 일어났다.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자를 창제 반포한 사건은 인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원제 Library:An Unquiet History(2003년).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