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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정주영-이병철, 수출 신세계 연 트로이카

이건희-정주영-이병철, 수출 신세계 연 트로이카

Posted December. 07, 20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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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효자품목 키운 이건희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45세의 나이에 삼성그룹을 이끌게 된 이 회장은 삼성을 한국의 간판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1등 기업이 됐고, 올 3분기(79월)에는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세계 휴대전화 매출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반도체, 휴대전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품목으로 키워낸 것이다.

이 회장의 취임 첫 해인 1987년 17조 원 수준이던 그룹의 연매출액은 지난해 254조 원으로 뛰었다. 삼성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신()경영 샌드위치론 창조경영 같은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지기도 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은 당시 국내 최고라는 명성에 안주하던 삼성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2001년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는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유럽 국가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서 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며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맨손으로 산업 일군 정주영

전쟁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맨주먹으로 산업을 일궈야 했던 시절, 정 전 명예회장은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와 조선, 건설 부문에 뛰어들어 현재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목인 선박과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정 전 명예회장이 과감하게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건설 시장 개척에 나서던 1965년만 해도 한국의 산업기반은 열악했다. 하지만 정 전 명예회장은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고, 베트남에서는 항만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의 최대 선박건조 능력이 10만 t에 불과하던 1960년대 말, 그는 수십만 t 규모의 초대형 조선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뛰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를 기공한 지 8년 만인 1980년 초 조선 분야에서 세계 10위에 올랐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자동차산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국 자동차의 역사는 1976년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인 포니 승용차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에는 현대차 엑셀이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를 누르고 미국시장의 수입소형차 판매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선견지명의 이병철

1938년 3월, 이병철 전 회장이 28세의 나이로 대구에 826.4m(약 250평) 남짓한 점포를 사서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내건 것이 삼성그룹의 시작이었다. 이 전 회장은 삼성물산공사의 무역, 제일제당의 설탕, 제일모직의 의류, 삼성전자의 텔레비전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이뤘다. 특히 1980년 일본 경단련()의 이나바 히데조 박사로부터 앞으로는 중후장대()한 산업보다 경박단소()한 산업에 살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랜 고민을 거쳐 반도체 산업에 투자해 삼성전자의 기틀을 닦았다.

이들에 이어 무역 1조 달러에 기여한 기업인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4.8%)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2.3%)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1.4%)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0.9%) 구본무 LG그룹 회장(0.3%) 등이 꼽혔다.

무역 1조 달러에 기여한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46.4%로 1위였고 이명박 대통령(13.5%) 김대중 전 대통령(10.2%) 노무현 전 대통령(8.7%) 전두환 전 대통령(2.1%) 순으로 조사됐다.



장선희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