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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랑

Posted May. 02, 2022 07:56   

Updated May. 02, 202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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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준 만큼 기대가 커진다. ‘내가 이만큼 사랑을 베풀었으니 최소 이 정도는 사랑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상대는 번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랑을 준다. 불공정한 거래다. 괘씸하고 불의한 일이다. 그래서 관계 파탄의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지운다.” ―김동규 ‘철학자의 사랑법’ 중

 미생물과 씨름한 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실험과 문헌을 통해 직접과 간접으로 별별 미생물을 다 만났다. 한 번은 먼 바다 깨끗한 물에 있는 한 미생물 무리가 사는 법을 보고 ‘작을 미(微)’에서 ‘아름다울 미(美)’를 느끼기도 했다. 물이 맑을수록 그만큼 유기물 함량이 적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먹이가 부족해 생활난을 겪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 해양 미생물은 이런 환경 조건에서 잘도 살아간다. 심지어 필수 아미노산 가운데 일부를 만들지 못하는 결점을 지닌 채로 말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아미노산을 조금 넉넉히 만들어 몸(세포) 밖으로 조금 분비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사실, 흔히들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 세상에서도 이 정도 품앗이는 다반사다.

 품앗이와는 다르게 선물은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선물이 갈수록 희귀해지고 있는데, 철학자 김동규는 이를 사랑이 증발하고 있는 징표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나는 씁쓸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은 정의가 아니기에 공평한 거래를 이룰 수 없다. 보통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정도는 준 만큼 받으려는 기대치와 반비례한다. 사랑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도 있듯이 부모의 사랑, 특히 모성애는 가장 큰 기울기를 만든다. 격동의 한 세기를 살뜰하게 살아낸 어느 할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떠오른다. “너희 덕에 참 잘 살았다!” ‘그대 덕에’라는 말이 가슴에서 절로 우러나올 때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