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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전략적 선택과 안풍

Posted February. 14, 2017 07:07   

Updated February. 14, 201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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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노무현 예비후보가 ‘대세론’의 이인제 예비후보를 결정적으로 꺾은 것이 3월 광주에서였다. 노무현은 제일 먼저 치러진 제주 경선에선 3등에 그쳤지만 울산에서 1위를 한 데 이어 광주에서도 이인제를 제쳐 파란을 일으켰다.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본격적으로 점화시킨 것이다. 이인제는 이후 텃밭인 대전에서 압승하고도 ‘보이지 않는 손’이 민주당 경선을 좌지우지한다며 경선을 포기했다.

 ▷이인제가 배후로 지목한 사람이 박지원 대통령정책특보다. 울산 경선에서부터 이상 징후를 느낀 이인제는 광주에서 노무현이 1등을 하자 청와대를 배후로 확신했다. 동교동계 조직과 민주당 외곽 청년조직 등을 통해 개입하지 않고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당시 음모론은 난무했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다.

 ▷15년 전 사건의 전말은 결국 박지원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박지원은 2013년 4월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해 “김대중(DJ) 대통령에게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수십 번 얘기하고 열심히 설득해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좋겠다’는 말을 받아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박광태 광주시장에게 조직을 총동원해 노무현을 지지하라고 했다는 증언이다. 햇볕정책 같은 DJ정신을 이행할 사람은 노무현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지원 외에도 광주의 노풍은 호남인들의 전략적 선택과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사표(死票)를 만들지 않겠다는 심리가 워낙 강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민주당 경선에선 DJ 이후 네 번 모두 호남에서 1등을 해야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호남 민심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부산 출신인 국민의당 안철수에게 힘을 실어줬다. ‘대세론’ 문재인에게 쏠리던 민심이 안희정에게 분산되면서 호남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첫 경선지 광주에서 안풍(安風)이 태풍으로 커지느냐, 미풍(微風)에 그치느냐에 이후 안희정의 운명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