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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 월급도 특권도 없지만 I Korea

Posted July. 29, 20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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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유학생 3명이 극우파 청년(스킨헤드)들에게 폭행을 당해 크게 다쳤다. 모스크바에 있는 주러시아 대사관의 담당 외교관이 즉시 사고 현장에 가기는 힘든 상황. 현지의 고려인 동포인 김기음(김 알렉산드르) 명예총영사가 먼저 현장에 도착해 사고 수습에 나섰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 뛰어다니는 현지인 명예영사(honorary consul)들의 열정은 직업외교관 못지않다. 한국 정부가 선임한 명예영사는 모두 122명. 이들은 봉급도 없고, 외교관의 특권도 없는 명예직이지만 자기 시간과 돈을 써 가면서 한국을 알리고 위급한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뛰어간다.

외교 사각지대의 첨병인 셈이다. 지난해 9월 현재 한국은 186개국과 수교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95개국 130개밖에 없는 상태. 공관이 없는 지역은 가까운 공관에서 겸임하지만 자칫 외교활동이 소홀해지기 쉽다. 또 언제 한국이나 한국민과 관련된 긴급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공관이 없는 국가나 도시에 명예영사를 두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고.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중심가 바흐라냔 거리. 태극기가 걸린 2층짜리 석조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정문에는 한국어와 아르메니아어, 영어로 대한민국영사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지난해 11월 임명된 아르멘 아브랴민 명예영사는 단독 건물의 영사관을 자비로 마련했다.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도 꼭 태극기를 달고 다닌다. 그 덕분에 우리 교민이 겨우 4명뿐이지만 한국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브랴민 명예영사는 영사관 개설 당시 모스크바에서 전세기를 띄워 한국 인사들을 예레반으로 초청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의 형인 아라 아브랴민 러시아 콩코드그룹 회장도 한러친선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어 형제가 모두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하지만 양국의 관계가 활발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근 한국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구입하려 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하고 일제 차를 샀다. 그는 명색이 한국 명예영사인 내가 일제 차를 타서야 말이 되느냐며 한국 기업의 아르메니아 진출을 호소했다. 내가 앞장서서 도울 테니 걱정 말고 들어오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외무장관이 친구

아르메니아의 이웃나라로 최근 카스피해 유전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에도 5월 술레예만 이브라히모프 AB스탠더드 부회장이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옛 소련 외교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그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정도다. 친구인 엘마르 마하람 맘마댜로프 현 아제르바이잔 외무장관이 1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한국 명예영사를 맡으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극동지역에 관심이 많던 이브라히모프 명예영사는 뜻밖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관계가 곧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 시아파 종교지도자 가문의 후예지만 낯선 한국을 먼저 문화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한국 공부부터 시작했다. 지난달 바쿠에서 열린 한국문화주간을 통해 접한 한국 미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서구인들보다 한국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며 한국 방문 일정부터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김기현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