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원가에서 수술받은 환자가 마취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장기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건이 의료계 안팎에 큰 파장을 남기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과 의료진조차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홍은심 기자
사고 자체도 충격이지만 그 이후 일부 의사에게서 나온 반응은 더 큰 불편함을 안겼다. “국제 가이드라인 어디에도 마취과 의사가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식의 주장 때문이다.
환자는 전신마취나 진정 마취 상태에서 자신의 의식과 호흡, 생명을 모두 의료진에게 맡긴다. 그런데 환자가 깨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가장 먼저 꺼내든 말이 “규정상 의무는 없다”는 해명이었다는 점에서 사회는 큰 허탈감을 느낀다. 의료는 언제부터 ‘하지 말라는 규정이 없으니 문제없다’는 논리로 움직이게 된 것일까.
광고 로드중
이번 사건에서 다시 주목받는 구조가 ‘초빙 마취과 의사’다. 의원이나 병원이 외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불러 마취를 시행하면 병원은 기본 마취료 외에 마취 유도·유지 관련 행위료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초빙료를 심평원에 청구할 수 있다. 원래는 응급 상황이나 상근 전문의 공백 등 예외 상황에서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부 개원가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외부 마취과 전문의가 여러 병원을 시간 단위로 이동하며 마취를 맡고, 병원은 환자에게 마취과 전문의 초빙료 명목으로 수십만 원을 별도로 부담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홍상현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대한마취통증의학회 보험위원장)는 “현재 일부 개원가에서 이뤄지는 프리랜서 마취 구조는 환자를 충분히 관찰하고 회복을 확인하기보다 시간 단위로 여러 병원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며 “환자 안전보다 회전 구조에 맞춰진 관행 자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단순히 환자를 재우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의식과 호흡, 혈압, 산소포화도 등 전신 상태를 지속해서 관찰하며 마취 유도부터 회복 과정까지 안전을 관리한다. 특히 전신마취나 진정 마취 과정에서는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이 핵심 업무다.
광고 로드중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과 의료진조차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형외과·외과·성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환자가 안정될 때까지 상태를 지켜보는 것은 기본적인 의료윤리”라는 반응이다.
의사 면허는 단순히 의료 행위를 허락하는 자격증이 아니다. 환자가 가장 무방비한 순간에도 의사가 자신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에 가깝다. 환자가 깨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의사 면허가 지닌 의미를 다시 묻게 될 것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