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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영]포괄임금제

입력 | 2025-12-30 23:19:00


“잘 모르는 청년들에 대한 노동 착취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한 제도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제도 자체의 남용 여지가 너무 크지 않나” “대체적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제도는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꼽혀 온 포괄임금제다. 1974년 대법원 판례로 인정돼 산업 현장에서 적용해 왔는데, 52년 만에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30일 고용부와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은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사전에 정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연구개발직, 사무직, 영업직 등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관리하기 어려운 직군에서 많이 활용해 왔다. 하지만 약정한 시간보다 일을 더 해도 추가 보상을 받기 어려워 장시간 노동, 공짜 야근을 유발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7월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20대 근로자는 주 80시간가량 근무했는데,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근로자의 동의가 있고,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또 정확한 법정 수당의 산정을 위해 출퇴근 시간 기록을 의무화하는 등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측정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의 근태 관리가 지금보다 엄격해져 기존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흡연·커피 시간, 대기 시간 등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등 노사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회사가 근로시간을 제대로 측정하겠다며 폐쇄회로(CC)TV나 마우스 감시 프로그램 등을 설치해 논란을 빚은 경우도 있다.

▷고정수당이 폐지되고 실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연장근로 수당 등이 줄어들어 근로자 소득이 감소할 우려도 있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업무의 질을 시간으로 측정하기 힘든 시대적 변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들은 행정비용 상승을 우려한다. 예외 규정을 구체화하고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등 보완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공짜 야근’으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시장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도 뒤따라야 한다. 유연근무제 확대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연봉 관리·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노동개혁의 목적은 단지 적게 일하자는 게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 적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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