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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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율이 급등하자 30년 전 ‘금 모으기 운동’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 국민들이 장롱 속 금붙이를 기꺼이 꺼내 놓았던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장면이 됐다. 당시 350만 명이 참여해 전국적으로 금 227t이 모였고, 이는 현재 한국은행 금 보유량(104t)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공동체적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엔 ‘美 주식 팔기 운동’
다시 찾아온 고환율 사태에 요즘은 ‘미국 주식 팔기 운동’과 같은 달러 수급 대책이 나온다. 과거엔 돈이 없어 달러 빚을 못 갚는 파산 사태였기에 달러와 맞바꿀 수 있는 금 모으기가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개인도 기업도 달러는 넘치는데 해외 자산 형태로 나가 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귀해진 새로운 형태의 고환율 문제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에게는 국장 유턴을, 수출 기업에는 쟁여둔 달러 환전을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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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기, 압박, 규제 완화, 세무조사 위협에도 환율이 1480원을 돌파하자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정부는 강력한 구두 개입과 함께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 22% 한시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 능력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이례적인 강력한 메시지와 세제 혜택까지 제시한 것이다. 24일 원-달러 환율은 33.8원 떨어져 1449.8원에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에선 결국 국민연금 환헤지 물량이 풀린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구조 개혁 의지가 안 보인다
환율이 1450원 선 아래로 진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지속적으로 상방 압력을 떨쳐내려면 결국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 동참이 필요하다. 이들이 한국 경제를 낙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냉소는 ‘정부가 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불신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고환율은 경제 체력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나타난 증상일 뿐이다. 국민연금 환헤지나 세제 인센티브는 고환율이라는 증상에 대한 단기 처방일 뿐,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근본책이 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 관계자들은 “구조적 체질 개선은 시간이 걸리니 단기 수급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국민들도 당장 잠재성장률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올리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대책, 비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공급 대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아파트가 ‘빵 굽듯’ 빨리 지어질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충분한 공급책을 우선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시범적 대책만으로도 시장이 이에 공감해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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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