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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에는 길이 넓게 트이고, 한 줄기 양기가 다시 돋는 좋은 절기.
아이들 얼굴빛이 환하게 보이고, 왁자지껄 시장 바닥의 소리 흥겹게 들린다.
단아한 여인들도 한데 모여들어, 저마다 진귀하고 화려한 물건을 치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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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城開博路, 佳節一陽生. 喜見兒童色, 歡傳市井聲.
幽閑亦聚集, 珍麗各携擎. 卻憶他年事, 關商閉不行.)―‘동지(冬至)’ 왕안석(王安石·1021∼1086)
동지 하면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기억하지만 옛사람들은 이날을 신춘의 시발점으로 쳤다. 추위는 본격화되지만 전통의 시간 감각으로는 이때부터 ‘양기’가 다시 돌아선다고 여겼다. 한겨울의 정점에서 봄을 예감하는, 심리적으로는 묘하게 계절감이 겹치는 절기다.
시인 역시 음기가 극에 달한 후 미세하게나마 방향을 틀어 봄으로 가는 첫 단추가 끼워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가 바라본 수도 개봉(開封)의 동지는 따스하고 여유롭다. 거리에는 아이들의 환한 낯빛이 등장하고 시장은 장꾼들의 아우성으로 왁자지껄 흥겹다. 평소 조신하던 여인들도 밖으로 나와 물건을 고르고, 손에는 진귀하고 화려한 물품이 들린다. 이 활기찬 분위기, 범박하게 그것을 범인(凡人)들의 평화라 부를 수 있겠다. 이때 문득 시인에게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도성의 대로, 상업의 활로가 막혔던 시절이다. 시인은 ‘지금의 번화’가 우연한 흥청거림이 아니라 열린 길 위에 쌓인 선정(善政)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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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