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
애사비가 무엇이냐고? ‘애플사이더비니거(Apple Cider Vinegar)’의 줄임말인데, 실체가 단박에 파악되지 않는다. ‘애플’이 사과인 건 안다손 치더라도 ‘사이더’는 또 무엇이며 왜 ‘식초’가 아니고 ‘비니거’인가? 우리가 조리에 쓰는 식초와 또 다른 조미료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더는 그저 사과를 으깬 즙이고 비니거는 당연히 식초다.
따라서 애사비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과즙식초’일 뿐이다. 이름 그대로 사과즙 100%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라, 특히 겨울 맛이 잘 든 무로 생채를 무치는 데 잘 어울린다. 이처럼 식초를 뜬금없이 영어인 ‘비니거’라 부르면 우리의 삶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음식의 언어에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며 심지어 음식마저 ‘푸드’라고 일컫고 있으니 의도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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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당을 더하지 않은 제품에 쓰는 ‘무가당’이 슬슬 국적 불명의 ‘언스위트’로 대체되고 있다. 맞는 영어 표현인 ‘언스위튼드(unsweetened)’라고 쓰면 더 어려우니 나온 말일 테다. 하지만 더 간결한 표현을 두고 왜 조어까지 만들어 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언솔트(무염·unsalted)’, ‘언필터(무여과·unfiltered)’까지 가세해 어지럽다.
기준을 잡아줘야 할 출판 번역의 세계 또한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단어 ‘슬라이스(slice)’는 조리의 맥락에 따라 번역을 다르게 해야 한다. 양파를 칼로 자른다면 ‘썰다’, 햄이나 고기 같은 식재료를 얇게 잘라낸다면 ‘저미다’라고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을 놓고 고민하기는커녕 ‘양파를 슬라이드 한다’와 같이 옮겨 놓은 경우도 있다. 차마 번역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은 이제 ‘오마카세(おまかせ)’의 천국이다.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이므로, 셰프 혹은 주방장에게 일임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같은 형식의 한식이나 양식도 ‘오마카세’라 일컫는 현실은 확실히 어색하다. ‘특선’이나 ‘코스’ 같은 더 잘 맞는 표현이 잡아먹히고 ‘프렌치 오마카세’ 같은 말이 쓰인다. 한술 더 떠 ‘이모카세’ 같은 단어까지 유통되는데, 재미도 없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은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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