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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민주화 이후 한국이 실패한 것

입력 | 2025-12-24 23:21:00

북한 핵보유, 집값 급등, 저열한 통치자들
민주주의 시대의 실패들
걸레는 빤다고 수건 되지 않아
내란전담부로 시작되는 사법 파괴 막아야



송평인 칼럼니스트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노태우의 과도기를 지나 1992년 말 김영삼이 당선됐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기자가 된 무렵부터 시작되는 이 민주주의 시대는 이전 세대 덕분에 풍요와 자유를 누렸지만 이후 세대에는 큰 부담을 떠넘긴 시대이기도 하다.

최대 실패는 북한 핵 보유를 막지 못한 것이다. 김영삼은 미국이 영변 핵발전소 폭격을 고려할 때 북한 핵 보유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실효적인 길을 차단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서 소련 체제 붕괴의 여파로 북한이 생존의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 측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북핵을 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러나 김대중은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기사회생시켜 줌으로써 하늘이 준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후 제네바 회담이니 6자 회담이니 하는 것은 스스로도 설득하지 못할, 신중함으로 가장된 기만이었다.

두 번째 실패는 서울 중심의 집값 급등과 그로 인해 생긴 국민들 사이의 심연이다. 건실하게 살면서 내 집을 꿈꿔온 세입자들을 하루아침에 벼락 거지로 만들고 서울을 뺀 모든 지방 주민을 초라하게 만든 집값 급등의 가장 큰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문재인에게 있다.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부자들은 소수였고 극빈층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살았다. 문재인의 집값 정책 실패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수 대 훨씬 더 많은 수 사이에 분열선이 그어졌다. 부당하게 늘어난 불로소득은 사회 정의에 맞지 않는 보유세와 상속세 탓에 환수되지 못하고 덩어리가 커진 부의 대물림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젊은이들은 학업 결혼 육아 등에서부터 우리 세대가 느끼지 못한 계층적 격차를 절감하며 살게 됐다.

이 실패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책임도 적지 않다. 헌재가 오지랖 넓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 내린 것이 노무현 때인 2004년이다. 그때 행정수도를 온전히 옮기고 부산 대구 광주 등 남쪽의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개발을 지속했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상당히 의미 있는 지역 균형 발전이 이뤄졌을 수 있다. 그러지 못한 결과 서울 집값 오른다고 신도시를 지어주고 교통편을 연결해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세 번째 실패는 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으로 이어지는, 한 시대의 말기 같은 저열한 통치자들의 등장이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불시착한 박정희 시대의 공주 박근혜다. 박근혜를 고리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문재인을 고리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윤석열을 고리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됐다. 모두 앞 사람의 실패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지 의문스러운 이들이다.

째려본다는 이유로 장관을 탄핵 소추하는 등 망나니의 칼춤 추는 듯한 줄소추가 이어졌는데도 탄핵 소추 자체는 정당하다는 무책임한 헌재, 군을 책임질 최소한의 능력조차 없는 자들이 군 통수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한편의 소극 같은 친위 쿠데타 시도, 윤석열의 난이 백이라면 여순 반란은 천이고 만인데도 역사적 법률적 균형 감각을 상실한 세력이 정략적으로 추진하는 내란 몰이, 배워도 천박한 대통령과 못 배워서 천박한 대통령의 꼴불견 행태들, 박근혜-문재인 때만 해도 그때가 최악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네 번째 실패는 진행 중이다. 우리가 막을 수도 있고 막을 수 없을 수도 있다. 바로 사법의 파괴다. 걸레는 빨아도 수건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식 내란전담재판부는 세탁해도 걸레일 뿐이다. 헌재의 탄핵이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 정당성을 얻었듯이 내란 재판도 내란 사건이 발생한 당시의 법률적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내란전담재판부는 무배당 방식이긴 하지만 따로 전담 재판부를 만드는 것으로, 그것조차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러설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물러서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위헌적인 내란전담재판부를 강행했다. 나아가 현 대통령 임기 내에 대법관을 8명 늘리는 증원안까지 마련해놓고 통과를 벼르고 있다. 그것은 모두 누구도 ‘자기 관련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자연법을 어기는 것으로 우리가 그 위에 서 있는 사회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며 로크가 언급한 이후 모든 헌법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저항권 발동의 사유에 정확히 해당한다.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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