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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은 군대에서나 통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모든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법적 의무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표현이 조금 바뀌었을 뿐 1949년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될 때부터 쭉 유지돼 온 조항으로,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76년 만에 이 조항을 없애기로 했다.
▷정부가 25일 입법예고한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꾼다는 것이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르되 “서로 협력”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했다. 위법한 지휘·감독은 따르지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상명하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검찰은 이미 2004년 검찰청법을 개정해 ‘명령 복종’을 ‘지휘·감독에 따른다’로 바꾸고 이의제기권을 인정했는데, 이제야 일반 공무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법을 바꾼다니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지금도 공무원이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명백히 위법·불법한 명령은 직무상의 지시 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정부의 공무원 징계업무편람에도 “위법한 직무상 명령에는 복종을 거부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수직적 공직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뭔가 아니다 싶어도 지시를 거부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부담감을 덜어내 주겠다는 게 법을 고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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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복종 의무가 사라지면 공직 기강이 흔들리고 업무 능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도 일부 젊은 공무원들은 상사가 지시하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곤 한다는데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단 얘기다. 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군에서 불법 명령인지 일일이 따질 겨를이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정부가 시행령에 판단 기준을 얼마나 상세하게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야 공직사회가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