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건축가의 예술 정신… 생전에 남긴 글 딸이 엮어 출간 종묘-수묵화-신라 불상 등 탐구… 日서도 한국인 정체성 잃지않아 ◇이타미 준 나의 건축/이타미 준 지음·유이화 엮음·김난주 옮김/320쪽·2만3000원·마음산책
이타미 준의 젊은 시절. 생전 그는 “인간의 생명과 강인한 염원을 담지 않는 한,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은 완성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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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1935∼2011·유동룡)은 조선백자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제주 ‘방주교회’와 ‘포도호텔’, 일본 ‘먹의 집’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돌, 바람, 흙 등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던 건축가. 2003년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그의 건축 세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 뿌리에는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갖춘 우리 전통 예술이 있었다고 한다.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대표작인 제주도 ‘수·풍·석(水·風·石) 미술관’ 중 ‘풍 미술관’(아래 사진)과 그 드로잉 작업.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음산책 제공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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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구는 재료에 그다지 골머리를 썩이지 않은 듯 보인다. 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만든 이가 그때그때 적당한 나무를 무심히 고른 느낌이다. (…) 애당초 작위적이지 않은 만큼, 온화하고 순수한 성자의 눈길처럼 은은하게 빛날 뿐이다.”
절제와 조화의 미학이 엿보이는 그만의 건축 세계가 어떻게 구축됐는지도 엿볼 수 있다. 일본 홋카이도에 세운 ‘석채의 교회’에 돌을 주재료로 쓴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끝없이 광활하고 풍광이 어마어마한 곳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인공적인 것은 겨울 한 철에 다 끝나버린다고 할까, 점과 선으로는 버틸 수 없다. 이 풍광에 대항하려면 반드시 덩어리여야 했다.”
책을 읽는 동안엔 마치 이타미 준이 지은 건물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집을 짓듯 세심히 지은 문장과 맥락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품격이 있다. 곳곳에는 직접 지은 시가 장식성을 더한다. “돌산 속 이름 없는 새 한 마리/숨겨진 돌의 길을/새와 그 생명은 알고 있었으니”(‘돌과 새’에서) 등 구절에서 건축과 자연의 본질에 끊임없이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그의 일생이 오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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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