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아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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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최근 3년 만에 귀국하니 갑자기 가난해져 버린 느낌이다. 물가가 지나치게 올라 버렸다. 회사 주변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면 대개 1인당 1만 원이 넘게 든다. 3년 전엔 6000∼7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았다. 즐겨 먹던 달걀 15구짜리 가격은 7500원에서 9500원으로 뛰었다. 우유 2병 세트도 6300원에서 7100원으로 역시 앞자리가 달라졌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놀랐다’는 필자 얘기에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더 놀랐다. 물가 상승세를 필자만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통계를 확인해 보니 그럴 법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3년 전에 비해 7.2%가 올랐다. 하지만 연간 상승률은 시간이 지나며 둔화했다. 소비자물가의 연간 상승률은 3년 전엔 무려 6.3%였다. 올해 들어선 월별로 2% 안팎에서 머물고 있다. 필자도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변화를 크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물가 상승이 항상 나쁘진 않다. 물가가 오르면 돈을 갚는 사람은 실질 부담이 줄고, 기업들이 돈을 빌려 실물에 투자하기 쉬워져 성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 이를 ‘먼델-토빈 효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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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물가가 뉴노멀이 될 분위기란 점이다. 주요국들이 성장을 유도하려고 저금리 정책을 예고하고 있는 데다 높아진 관세는 수입 물가를 올릴 것이다. 폭염과 폭우에 작황이 나빠져 농수산물 공급마저 줄어 물가가 유독 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며 일상화될 듯하다. 이제 저렴하게 소비하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정부는 물가로 비판을 받을 때마다 ‘고물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원인이 복합적이라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물가는 뾰족한 대책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물가를 자극하는 대책은 자제해야 한다. 돈 풀기 정책이 유독 우려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행에 12조2000억 원의 국비를 투입한다. 내년 예산안은 사상 처음 700조 원을 넘겨 73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을 씨앗처럼 뿌려 경제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재정을 에너지 시설이나 주택 건설 등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데 집중적으로 뿌리면 괜찮다. 하지만 일회성 현금 지원에 많이 쓰면 물가 상승을 촉진한다. 게다가 정부 부채까지 늘고 있어 물가가 더 걱정이다. 한국재정학회는 올 6월 ‘정부 부채가 1% 늘면 소비자물가가 최대 0.15%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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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