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중심의 발레 무대에 혁명 예술 기획가 댜길레프 삶 조명 ◇댜길레프의 제국/루퍼트 크리스천슨 지음·김한영 옮김/460쪽·3만8000원·에포크
하지만 러시아에선 달랐다. 춤추는 기술은 정확성, 체력, 강인함 같은 전사의 미덕을 보여주는 명예로운 능력으로 여겨졌다. 혈기 왕성한 남자 무용수들이 타이츠를 입고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군사 훈련, 검술 등 군대 문화 속 춤의 역할과도 비슷했다. 볼쇼이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는 붉은 군대 공연단의 무용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당대 러시아 발레의 차별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발레단 ‘발레 뤼스’의 흥행 성공을 이끌며 유럽 전역에 이를 소개한 인물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일대기를 조명한 책이다. 영국의 무용평론가인 저자는 발레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댜길레프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자료를 찾고 생생한 취재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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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길레프는 발레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에 도전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 금기시되던 하위문화를 가지고 발레에 새로운 형태의 관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이 발레 뤼스에 열광했고 발레는 주류 예술로 부상했다.
오늘날에도 세계 5대 발레단 곳곳에 발레 뤼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포진해 있다. 여러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돼 발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책장이 넘어갈 것 같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