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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김 여사 특검’과 ‘채 상병 특검’ 중 하나만 받으라면

입력 | 2024-05-12 23:21:00

尹기자회견서 ‘VIP 격노설’ 답변 안 해
부인 건드리는 건 용납 못할 거란 세평도
이재명 ‘사법리스크 공수교대’ 호재 잡아
안일한 대응 땐 나락… 국민 앞에 솔직하길



정용관 논설실장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중 꼭 하나는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특검법을 받을까 하는 얘기를 사석에서 나눠봤다. “부인을 그렇게 끔찍이 여기는데…” 하는 즉자적 반응이 많았다. 법리를 떠나 ‘부인 특검법’은 절대 받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순애보인지 자존심인지 알 수 없으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굳어져 있는 듯했다. 필자도 얼핏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본인 문제와 부인 문제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본인 문제를 감당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물론 이들 특검법의 타당성을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두 사안의 무게는 다르다”는 어느 원로 학자의 말을 되새겨 본다. 김 여사 리스크는 엄밀히 말하면 ‘사인(私人)’의 문제이지만 채 상병 사건은 군의 명령을 이행하던 한 젊은이의 죽음, 초기 조사 및 경찰 이첩 과정에서의 국가 권력 개입 의혹, 멀쩡하던 해병대 대령의 항명죄 기소 등이 얽힌 공적(公的)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중대하다는 것이다.

용산 참모들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사건에 대해선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권한이 없는 만큼 ‘수사 외압’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공수처가 수사 중인 만큼 그 결과를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형식 논리적으론 맞는 말 같지만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공수처 수사 역량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른바 ‘VIP의 격노’로 인해 사건 기록 회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퍼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그날의 진실에 대해 속 시원히 듣기를 기대했다.

대통령은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국방장관을 질책했다”고만 했다. 야당이 대통령의 직권남용 사법방해 운운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한 걸로 보긴 어렵다. 사고 질책은 있었을 테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이첩 및 회수 과정에서의 격노설 의문은 그대로 남았다. 의도적인 답변 회피로 비쳤고 당당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이 틈을 보이고 수비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더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참에 ‘쌍특검’ 앞에서 머뭇대고 있는 용산을 탄핵 직전까지 몰아붙일 태세다. 마치 사법리스크의 공수(攻守)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면 이 대표도 마음이 급하다. 사법 리스크의 현실화 시간이 하나하나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찐명’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교통 정리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이 대표는 정교한 로드맵을 갖고 움직이는 것 같다. 채 상병 특검에 이어 김건희 특검을 몰아칠 개연성이 농후하다. 탄핵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내심 개헌론으로 대통령 임기 단축을 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법 리스크의 시간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데, 용산의 대응은 굼뜨기 짝이 없다. 위기감을 갖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통령이 탄 배는 3년은 더 항해해야 하는데 물은 얕아졌고 암초는 널렸다. 국민의힘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사방이 적이라고 여길 공산이 크다.

혹시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와의 회담을 앞두고 ‘함성득-임혁백’ 비선 라인을 가동한 것일까. “이 대표와 경쟁할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 “부부 동반 모임도 갖고 골프도 하자” 등의 말을 전했다는데, 실체가 있는 얘기인지 꾸며낸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용산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여태까지 법적 대응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갖가지 억측만 난무한다.

함 교수는 보도 확인 요청에 “윤 대통령의 큰 정치를 향한 진정성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큰 정치’를 위해 이 대표에게 무슨 거래(去來)를 타진한 것이라면 황당한 일이다. 윤 대통령의 불안감과 이 대표의 조급함이 부딪치는 지점이 쌍특검이다. 윤 대통령이 여기서 안일하게 대응하거나 오버하면 나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서로의 리스크를 덜기 위한 물밑 큰 거래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진정한 큰 정치는 국민 앞에 솔직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쌍특검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의 ‘질책의 진실’을 밝히는 것부터 하나하나 꼬인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