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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령-황 대위가 아이 넷을 낳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4-05-06 23:10:00

황해일 대위♥이은혜 중사 공군 사남매 1일 공군 전투기 앞에 선 황해일 대위, 이은혜 중사 부부와 첫째 찬성(앞줄 오른쪽), 둘째 아정(앞줄 왼쪽), 셋째 우승(뒷줄 왼쪽), 막내 자영. 공군 제공

손효주 기자


심각한 저출생이라지만 군은 사정이 좀 다른 듯하다. 장교, 부사관 등 군 간부 중엔 셋 이상 다자녀를 둔 이들이 유독 많다. 군 밖에선 ‘만혼(晩婚)이 트렌드’란 말까지 나오지만 군에선 20대에 결혼해 30대 초반에 자녀를 여럿 둔 이들도 많다.

통계청의 2022년 통계를 보면 미성년 자녀가 있는 469만686가구 중 자녀가 3명 이상인 다자녀 가구는 9.7%(45만5911가구)다.

군은 어떨까.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기혼 군 간부 중 자녀가 있는 이들은 7만2107명. 이 중 다자녀(3명 이상) 간부는 16.3%(1만1741명)에 달한다.

물론 국방부 자료는 일부 성인 자녀가 포함한 통계고, 통계청 자료는 미성년 자녀만 집계한 것이다. 그런 만큼 군과 민간 간 다자녀 비율 격차가 실제론 덜 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차이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병대 김범중 소령(35)도 다자녀를 둔 간부다. 2014년 25세에 첫째를, 2015∼2020년 둘째∼넷째를 낳았다. 31세에 3남 1녀 아빠가 된 것. 지난해 기준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이 33.97세인 것을 고려하면 한참 빠르다.

김 소령은 왜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자녀 1명도 안 낳는 시대에 4명을 낳았을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관사가 제공되는 것이었습니다. 주거가 안정적이니까 다음 계획을 세울 여유가 생기는 거죠.” 김 소령은 “관사가 없었다면 결혼도 미뤘을 것이고 아이도 많이 낳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최근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가 진짜 대한민국 수호자’라는 주제로 다자녀 부부 군인들을 취재했다. 이들도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공군 황해일 대위(32)는 25세이던 2017년 당시 26세이던 공군 이은혜 중사(33)와 결혼해 2남 2녀를 뒀다. 황 대위는 “아이를 많이 낳은 건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관사가 제공된 영향도 컸다”고 했다. 세대를 조금 올라가 3남 2녀를 둔 공군 김영국 중령(47)도 “관사가 나오니까 아이 키울 만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군은 관사가 아닌 민간 아파트 등을 거주지로 택한 이들에겐 전세자금을 빌려준다. 지역별 대출 금액이 다른데 서울 기준 3억6000만 원이다. 이자도 대신 내준다. 김 소령도 셋째를 낳은 뒤 관사에서 나와 민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민간인인 친동생이 집 마련 문제로 고민하다 결혼을 미루는 걸 보면서 집 문제가 결혼과 출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저출생 문제를 연구해온 서용석 KAIST 미래전략연구센터장(교수)은 “군 내부 시스템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해 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제공한 관사라는 주거 형태 자체가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거주자들이 같은 직업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일부나마 육아 상부상조가 가능하다 보니 출산과 양육에 비교적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자녀 간부는 근무지 혜택도 받는다. 공군은 네 자녀 이상이면 본인이 희망할 경우 전역할 때까지 평생 한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다. 군 간부들이 입 모아 말하는 가장 큰 고충은 잦은 이사 및 이로 인한 자녀 교육 및 부적응 문제인데 이런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의미다. 육군도 세 자녀 이상이면 막내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본인 희망 지역에서 우선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장교는 “자녀가 2명 이상인 경우에도 일정 기간 한 부대나 같은 권역 근무를 보장해주면 출산이 군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육군이 최근 네 자녀 이상 남성 간부의 당직 근무를 면제하는 등 군 당국은 출산율을 높이려는 크고 작은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관사 제공 등으로 민간보다 출산 결정이 비교적 수월한 군에서만큼은 저출생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물론 군에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관사 노후화나 4명 이상 다자녀임에도 부대 관사 여건이 좋지 않으면 20평대 집이 나오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부가 찾아 헤매던 저출생 문제 해법을 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생아 특례대출이 있다지만 출산 시 아예 전세자금 이자를 면제해주는 등 군에 준하는 파격적인 지원이 없다면 저출생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답도 나와 있는 듯하다.

저출생 문제로 국가 소멸론까지 거론되는 시대다. 군의 ‘특수 모델’을 참고해 민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전례 없는 위기엔 전례 없는 방법만이 정답일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