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중도-계층적 중산층-중부 수도권’ 18대 총선 때 외연 확장 성공해 단독 과반 이번 총선 유권자들, ‘보수 리빌딩’ 회초리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선거가 끝나고 각 정당과 후보들은 나름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 성적표는 지난 몇 년 동안에 대한 평가의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다가올 정치 여정을 각 정당이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유권자들이 내렸다는 의미도 있다. 이 지면에서는 이번 선거가 여당인 국민의힘에 던진 메시지를 정리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토론해 보고자 한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던진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지난 2년 동안 집권 여당 역할을 했던 국민의힘이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정치는 입법을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지난 2년간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이것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책임이 과연 반대만 일삼은 야당에 있는지, 야당에 대한 대화와 설득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은 그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조 심판론)’이 맞선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애초 승산이 없었다. 여야 공히 이번 선거를 대통령 선거의 연장전처럼 치른 곳에서 개인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개인기’나 ‘로컬’한 특수성이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선거 후 조사 데이터를 보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역구 후보 선택을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는 해당 유권자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매우 당파적이고 전국적인 선거를 치른 것이다.
양당의 극한적 대립이 한국 정치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양당제의 공고화가 반드시 국민의힘에 유리한 상황인지는 이제 되물을 시기가 온 것 같다. 386세대의 막내들이 4, 5년 후에는 60대가 되고, 수도권 유권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이제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어렵다면 보수의 의제가 어떻게 노동, 여성, 환경, 기후, 지역 등의 이슈들과 접합되는지를 고민하고, 오히려 제3지대의 대안적 정당들과 협력이나 연합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관련하여 이번 총선의 세 번째 특징은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는 점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 여야가 얻은 의석수는 19석 대 102석이었다. 아마 국민의힘에 더 두려운 사실은 이것이 지난 21대 총선과 대동소이하다는 점(16석 대 103석)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 참패가 패턴이 되어 버리면 지역 정당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08년 18대 총선은 한국 보수정당의 최전성기였다. 이명박 정부가 갓 집권을 시작한 후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 한나라당은 전체 153석을 획득하여 단독 과반을 확보했으며, 더 주요하게는 서울 지역 48석 중에서 40석을, 수도권에서만 81석을 얻어 당시 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의 26석을 압도했다. 최근 두 번의 수도권 성적표와 비교해 보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해당 선거는 고 정두언 의원의 삼중(三中)전략으로 알려진, 이념적 중도, 계층적 중산층, 공간적으론 중부 수도권 등 한국 보수정당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극적으로 성공했던 선거이기도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끊임없이 국민의힘에 요구하는 것은 2008년에 구성된 이상과 같은 보수연합이 붕괴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소위 ‘삼중연합’은 박근혜 정부와 탄핵을 거치면서 붕괴했다. 새롭고 젊은 보수와 전통적 보수가 동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개인주의적 보수가 국가 주도 경제 성장 보수와 동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화적으로 개방되고 자유로운 보수가 태극기 안보 보수와 동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20년 집권설’이 이즈음 나오기 시작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