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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민우]중앙은행들의 新골드러시에 한국은행이 뛰지 못한 이유

입력 | 2024-04-24 23:42:00

박민우 경제부 차장


“남들 금(金) 사재기할 때 뭐 하셨습니까? 11년 넘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올해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이런 질책이 쏟아질 것 같다. 금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022년 11월 온스당 1618.3달러였던 금 선물 가격은 이달 12일(현지 시간) 2448.8달러까지 올랐다. 1년 5개월여 만에 51% 넘게 오른 셈이다.

실제로 이 기간 각국 중앙은행들은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였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1082t(역대 최대), 1037t의 금을 사들였다. 2016∼2021년 연평균 매입량(457t)의 두 배 이상을 매년 사모은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고 있다. 이 기간 사들인 금만 314t에 달한다.

이런 신(新)골드러시를 한은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픈 기억 때문이다. 2010년 국회 국감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는 13년 넘게 그대로인 금 보유량(39.4t)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면서 금값이 치솟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이후 한은은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금 90t을 집중 매입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국감장에서 ‘금을 사랑한 총재’로 불린 김 전 총재는 ‘뒷북 투자’를 했다며 또 한 번 탈탈 털렸다. 한은의 금 투자 이후 금값이 급락하면서 약 1조2000억 원의 평가손실(―21.5%)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한은이 금 가격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고 몰아붙였다. 김 전 총재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10년 후를 보고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 수년이 흐르고 금값이 오르자 당시 한은의 금 투자가 재평가받긴 했다. 그렇지만 그때 입은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t으로 11년째 그대로다.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52%에 불과하다. 중국(2235.4t)과 일본(846.0t)은 각각 4.33%, 4.37%이고, 경제 규모가 비슷한 대만(423.6t)도 4.32%에 달한다.

이런 탓에 작년부터 금 보유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도 한은 외자운용원은 작년 6월 발표한 ‘보유 금 관리 현황 및 향후 운용 방향’에서 “금 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며 듣지 않았다. 당시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 수준으로 전 고점에 근접해 향후 상승 여력이 불확실하다던 한은의 전망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게 오래된 트라우마 탓이 아니라면 부족한 실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자산 다각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금 보유 비중을 일정 수준까지 확대해 환율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미 대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 가능성, 그에 따른 달러화 평가 절하까지 고려해야 한다.

뒤늦게 금 사재기 행렬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만큼 전처럼 상투를 잡으면 트라우마만 더 악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금 투자 원칙과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금 가격 흐름을 좀 더 정교하게 예측하고, 전략적으로 매입 시점을 판단해야 한다.




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