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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유례없는 與 참패… 국민은 尹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했다

입력 | 2024-04-11 03:00:00

불통과 독선 끝내고 소통과 협치하라는 명령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한 뒤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와 위성정당 비례대표를 합쳐 11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집권여당이 이처럼 크게 패배한 것은 역대 총선 사상 처음이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는 집권 3년 차에 국정 대전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32년 만의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윤석열 정부 2년 국정에 최악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2년 전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를 이룬 뒤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국민의힘으로선 참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4년 전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여당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린 결과였다. 여야의 위치가 바뀐 지금, 국민은 거대 야당의 폭주에 대한 견제보다는 국정의 1차 책임을 진 정부와 여당을 매섭게 질타한 것이다.

민심은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과 독선적인 ‘검사 리더십’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과 내각 곳곳에 자신이 잘 아는 사람, 같이 일해본 사람들을 배치하면서 내부의 쓴소리는 사라졌다. 언론과의 소통 단절, 입을 틀어막는 과잉 경호는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고착화했다. 나아가 밀어붙이기식 정책 드라이브는 번번이 국회 권력을 쥔 야당과의 충돌을 불렀고, 그때마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 탓과 거대 야당 탓으로 일관했다. 야당 대표와 밥 한 끼도 함께하지 않은 것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처럼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외면하면서 윤 대통령은 당정 일체를 내세워 여당을 사실상 ‘윤석열의 당’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여당 대표를 연달아 내몰고 주저앉혀 여권의 응집력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런 무리한 당 장악으로 한때 확장됐던 보수의 지평은 크게 좁아졌다. 나아가 일부 열성 지지층을 향해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이념 논쟁의 선두에 서서 진영 대결을 조장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도 윤 대통령은 초대받지 않은 이슈 메이커였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후배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여당의 수장으로 보낸 뒤 자신도 전국을 돌며 24차례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균형 재정을 외치던 게 언제였냐는 듯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같은 수십조 원 규모의 재정 지출 약속을 쏟아내며 사실상 여당 선거전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그런 한편으로 윤 대통령은 부인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대통령실 참모의 막말, 주호주 대사 임명 논란 등 불편한 이슈에는 여권 내부 갈등까지 불사하며 여당 선거를 ‘대통령 리스크’에 빠뜨렸다. 특히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따른 의정 갈등 장기화는 윤 대통령의 뚝심이냐 오기냐라는 논란을 불렀고, 선거전 후반 불거진 야당 후보들의 부동산 비리와 저질 막말 논란은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에 묻혔다.

이처럼 선거전 내내 윤 대통령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일대 변신을 노린 국민의힘의 노력마저 무색해졌다. 정치 신인으로서 여당 쇄신을 외치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목련 피는 봄’ 같은 뜬구름 공약을 남발하더니 어느새 거칠고 험한 언사로 범죄자를 단죄하던 검사 시절로 돌아갔고, 선거 종반엔 ‘야당 200석’의 위기론을 내세운 읍소전략만 남겼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깊은 실망감을 표시하며 변화할 것을 명령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물론이고 국정 기조 전반의 대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복원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정치적 현실이 됐다. 당장 야당의 협조 없이는 예산권과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고, 입법이 필요한 정부 정책도 거대 야당의 견제 속에 국정의 주도권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에겐 3년의 임기가 남아 있다. 직면한 정치 환경은 대통령 당선의 여세를 누리며 높은 기대를 받던 임기 초반과는 전혀 다르다. 윤 대통령에게 지난 2년 거야의 벽이 핑곗거리였다면, 앞으로 3년의 거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윤 대통령 자신도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예견처럼 당장 여권 내 패배 책임론에 시달리는 등 잔인한 시간이 닥쳐올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스스로 바뀐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낮은 자세로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겸손한 리더가 돼야 한다. 전면적인 국정과 인사 쇄신, 열린 소통으로 신뢰부터 되찾아야 한다. 야당의 협조를 얻는 데 필요하다면 준거국내각이라도 꾸려야 한다. 국민의힘 역시 변해야 한다. 수평적 당정 관계를 정립할 지도부를 신속히 구성해 대통령과 야당 간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은 첫 삽도 못 뜬 상태다. 역대 정부의 굵직한 개혁도 대부분 여소야대에서 이뤄낸 협치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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