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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층권까지 비행체 올려주는 이차전지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4-03-30 01:40:00

고성능 배터리로 항공-방산 시장 개척하는 ‘유뱃’
전극의 균일성 높여 혁신… 양극과 음극 모두에 적용 가능
“전기 흐름 2배가량 좋아져”
더 가볍고 오래 가는 배터리로… 항공 모빌리티 영역부터 개척
“UAM-자동차 시장까지 노릴 것”



이창규 유뱃 대표이사(오른쪽)와 이상영 부사장이 대전 유성구 본사 1층 제조 라인에서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공정 중 양극 활성물질을 균일하게 코팅하는 균일 후막 전극(TEP)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유뱃 제공


이차전지는 자동차, 중대형 드론, 로봇 등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고, 앞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우주항공 등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전지의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유뱃(UBATT)은 이차전지의 핵심 부품인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기술로 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같은 전극재(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사용하더라도 유뱃의 기술을 적용하면 전기 흐름이 훨씬 빨라지고, 전기 흐름이 양호한 양극을 두껍게 만들어 오래가는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다.

26일 대전 본사에서 만난 이창규 대표이사(52)는 “전극 제조 기술을 혁신해 기존 전극에 비해 전기 흐름을 2배 정도 빠르게 했다”며 “전기 흐름을 향상시키는 기술로 에너지 밀도를 높임으로써 부피와 무게는 작지만 출력과 용량이 상대적으로 큰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다”고 했다.

작아도 성능이 좋은 배터리를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분야로 항공 모빌리티를 상정하고, 우선 상용 및 군용 드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향후 라이선스를 파는 방식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기술

고출력이 필요한 헬기형 드론에 쓰이는 중국산 배터리는 유뱃 배터리에 비해 30%가량 더 무겁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유뱃 제공

유뱃은 대전 본사 1층에 배터리 제조 공장을 갖추고 있다. 자사가 보유한 기술로 양극과 음극을 생산해 적진을 탐색하거나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군용 드론의 배터리를 만든다.

이차전지의 양극은 양극재를 알루미늄 박막에 코팅해 만들고, 음극은 음극재를 구리 박막에 코팅해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극과 음극 사이에 분리막을 넣고 돌돌 말아서 전해액을 주입하면 원통형 이차전지가 되고, 판자 형태로 겹겹이 쌓아 전해액을 주입하면 파우치형 이차전지가 된다.

유뱃은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방식에 ‘균일 후막 전극(TEP·Tunable Electrode Platform) 기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극 활물질은 리튬과 니켈, 망간, 코발트 등이 섞인 광물 가루다. 여기에 활물질들이 잘 결합할 수 있도록 바인더 성분을 넣고, 활물질까지 전자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전재를 넣는다. 이 대표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첨가제로 전극 구조를 제어(카본 도메인의 자기조립화)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기술”이라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만든 전극이 굴곡진 국도라면 우리가 만든 전극은 고속도로인 셈”이라고 했다.

유뱃은 TEP 관련 특허 12건을 보유하고 있다. 비밀유지 계약으로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 및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검증(PoC) 및 공동 연구개발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 항공모빌리티에 ‘최적’… 확장성 넓어

유뱃의 기술을 활용하면 동일한 전극재를 사용하더라도 고성능을 낼 수 있다. 같은 전지 무게라면 출력과 용량을 높일 수 있고, 같은 출력과 용량이라면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수색이나 구조, 탐지 임무를 하는 드론의 경우 이렇게 해서 늘린 비행시간은 특정 임무의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관건이 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대표는 “수색이나 구조 등 안전이나 국방과 관련된 업무에 적용할 기술을 국내 기업인 우리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자부심을 느낀다”며 “근래 방산용 배터리를 제조하던 업체들이 이스라엘과 러시아, 미국 기업에 인수합병돼 국내 기업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현재 유뱃은 리튬메탈전지 ‘스트라토스(STRATOS)’와 리튬이온전지 ‘트로포스(TROPOS)’의 개발 막바지에 있다.

스트라토스는 지구 대기 성층권(Stratosphere·지상 10∼50km 구간)의 영문명에서 따왔다. 전기추진 비행체가 성층권까지 도달하려면 우리나라의 경우 강한 편서풍대에 놓여 있어 450Wh/kg 이상의 에너지밀도가 요구된다. 기존 리튬이온전지 및 리튬메탈전지(최대 400Wh/kg)로는 한계가 있다. 유뱃은 TEP 기술로 초고에너지밀도(400∼600Wh/kg) 리튬메탈전지를 만들어 한계를 극복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밀도를 가진 이 배터리는 올해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선보여 해외 여러 기업으로부터 기술검증 제안을 받았다.

리튬이온전지인 트로포스의 이름은 성층권 아래인 대류권(지상 0∼10km 구간)의 영문명에서 나왔다. 유무인 항공기가 주로 운항되는 구간이다. 항공모빌리티 시장에 특화된 제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유뱃의 기술은 여러 소재에 적용이 가능하다. 안정성은 높지만 용량이 낮은 리튬인산철(LFP) 양극에 적용해 기존 대비 10% 이상 성능을 향상했다. 실리콘이 포함된 음극에 적용할 경우 에너지 밀도를 kg당 250Wh로도 높일 수 있다. 이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기존 삼원계(NCM이나 NCA) 배터리와 유사한 성능을 내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 경영자와 기술자들의 만남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항공모빌리티용 고성능 배터리를 소개한 유뱃.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유뱃 제공 

이 대표는 KAIST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테크노MBA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물산과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 포스코 등을 거쳐 창업을 두 차례 했다. 2016년 이상영 연세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56·당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와 연이 닿아 공동으로 유뱃을 창업했다. 부사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서울대 공업화학과 학사, KAIST 화학공학과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연구개발을 12년 한 뒤 학계로 옮겼다. 최고운영책임자인 김창현 전무(51)는 KAIST에서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롯데케미칼에서 연구개발을 12년 한 뒤 배터리 기업에 근무하다가 2022년 합류했다.

유뱃의 기술진에는 이 교수의 제자들이 포진해 있다. 창업 멤버이자 최고기술책임자인 최근호 이사(36)는 UNIST를 최우수로 졸업했고 배터리 연구 경력 14년, 배터리 관련 특허를 2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최 이사가 개발한 초박형 배터리 제조 기술이 창업 당시 핵심 기술이었고, 그 기술을 발전시켜 TEP 기술이 완성됐다. 창업 멤버인 김정환 연구소장(36) 역시 이 교수의 제자로 배터리 관련 특허를 10개 이상 보유한 전문가다.

유뱃은 올해 하반기부터 제품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본사 인근에 연면적 650여 평의 건물을 확보해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확장 가능성이 넓은 TEP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요에 맞춘 고성능 배터리를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항공 모빌리티 분야에서 UAM에 쓰일 대용량 배터리는 물론 자동차용 초고에너지밀도 배터리 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