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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배역 ‘장발장’ 맡아… 작품하는 모든 순간이 혁명”

입력 | 2024-02-19 03:00:00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역 최재림
장발장역, 연기-노래 모두 고난도… 배우 16년차, 오디션 삼수 끝에 성공
‘오페라의 유령’, 유령역도 따 겹경사
“지금 받는 관심, 언제든 꺼질수 있어… 새 배역, 새 작품에 계속 문 두드릴 것”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을 맡은 최재림은 “연령대별로 버킷리스트인 배역이 있다. 장발장은 사람으로서 뿌리를 내린 40대 즈음에 꼭 해보고 싶던 역할”이라고 말했다.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혁명(革命)은 천명(天命)을 새로이 한다는 뜻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시대적 변혁 이전에 자기 자신을 혁명했다. 빵과 은 식기를 훔치고 세상을 저주하던 그는 가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 최재림(39·사진)은 “내게 혁명은 작품을 하는 모든 순간”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역을 맡은 그를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레미제라블’은 37년간 53개국에서 1억30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스테디셀러다. 국내에선 2015년 이후 8년 만인 지난해 10월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을 거쳐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4월 7일까지 공연된다. 장발장 역은 최재림과 민우혁이 번갈아 맡는다.

“회차가 지나며 ‘관성이 생겼나’ 싶으면 일상부터 송두리째 바꿔요. 늦잠은 금물, 운동 강도도 올리죠.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새 작품, 해보지 않은 배역에 계속 문을 두드리고요.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려고 혁명을 하죠.”

두드림 끝에 그는 지난해 남자 배우들에게 ‘꿈의 배역’으로 통하는 장발장 역과 ‘오페라의 유령’ 유령 역을 모두 거머쥐었다. 지난달 말 유령 가면을 벗은 뒤 8일부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주인공 제이미 역으로 출연 중이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배우 16년차, 오디션 삼수 만에 배역을 따냈다. 11년 전 서울 초연 당시 혁명대를 이끄는 청년 앙졸라 역으로, 2년 뒤 재연에선 수염과 머리칼을 잔뜩 길러 장발장과 자베르 역에 동시 지원했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는 “이번에도 붙을 거라 확신은 못 했다. 단지 ‘이번에도 안 되면 내 인생에 장발장은 없다’는 다짐뿐이었다”며 “유령과 장발장 배역이 거의 동시에 결정됐을 때 기뻐서 마음속으로 춤을 췄다”고 했다.

증오와 자비라는 극단의 감정을 오가는 장발장은 연기, 노래 모두 초고난도로 꼽히는 배역이다. 조용하지만 힘 있게, 섧지만 담담해야 하는 2막 ‘Bring Him Home’ 등 감도 높은 넘버로 가득하다. 그는 “소절마다 담아내야 할 감정의 폭이 너무나 넓다. 장발장을 전부 보여주기에는 160분도 짧다”고 말했다. 이어 “장발장의 상황에 나를 수없이 대입해 심정을 헤아리려고 애썼다. 그래도 철천지원수를 눈앞에 두고 놓아주는 행동은 최재림은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깎아낸 듯 간명한 어조로 말하는 그도 슬픔을 삼키는 장발장 앞에선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는 “딸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 사라져주는 장면을 연습할 때 많이 울었다”며 “다만 무대 위에선 내 감정에 스스로 젖지 않고 캐릭터의 상황과 노래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최대한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 있다. 탄탄대로를 눈앞에 둔 장발장이 제 발로 법정을 찾아 무고한 죄수를 대신해 자백하는 장면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최재림은 “지금 받고 있는 스포트라이트가 언제든 꺼져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20대 중후반이 터닝포인트였다. 박칼린 선생님을 만나 배우로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며 올해도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을 예고했다.

“지난해는 정말 꿈같았죠. 뮤지컬 역사의 상징적인 배역들이 제게 주어진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새해 목표는 ‘결단하고 조절하기’. 저와 관객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될 겁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