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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주민들, 밤추위 대피소에서 쉬세요”

입력 | 2024-01-16 03:00:00

서울시, 목욕탕을 한파쉼터로 개장
서울역-종로 등 4곳 내달까지 운영
목욕탕 사업주에게 운영비용 지원
“추위가 재난이란 인식 갖고 도울 것”



10일 서울 용산구 쪽방촌 일대에 있는 하남사우나 정문에 ‘밤추위 대피소’ 이용 안내 수칙이 붙어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밤새 몸을 녹일 수 있는 밤추위 대피소를 2월 말까지 운영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잠자는 게 힘들었는데, 밤새 몸 녹일 곳이 생겼어요.”

10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 쪽방촌 일대 하남사우나. 최저기온이 영하 3도까지 내려간 이날 이곳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동행목욕탕 목욕이용권’이라 적힌 종이를 내민 주민들은 사우나를 운영하는 부부에게 담요를 건네받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만난 서울역 쪽방촌의 한 주민은 “전기장판을 깔아도 쪽방촌 일대는 겨울에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너무 추웠는데 목욕탕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추위에 떨지 않고 잘 수 있어” 호평
이곳은 원래 야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6일부터 서울시의 야간 한파쉼터 사업에 동참해 쪽방촌 주민들이 따뜻하게 자고 갈 수 있는 ‘밤추위 대피소’로 개장했다. 남편 방진실 씨(66)와 함께 사우나를 운영하는 백정숙 씨(61)는 “연말경 TV로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이 좁은 방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힘겹게 겨울을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밤추위 대피소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 씨와 백 씨는 밤추위 대피소를 연 뒤 주민 한 명이라도 더 이곳을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안내 문구를 건물 곳곳에 붙였다. 쪽방촌 주민들이 덮을 수 있는 두꺼운 담요 30장도 미리 사서 사우나 입구에 차곡차곡 쌓아 뒀다. 방 씨는 “대피소 개장 이후 매일 밤새 보일러를 돌리고 있다”며 “야간에 근무할 직원이 따로 없어 아내와 함께 사우나를 지키며 주민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나 안에 마련된 숙면 공간에서 주민들은 담요와 베개 등을 챙겨 한파 걱정 없이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한 쪽방촌 주민은 “내가 사는 곳은 건물이 오래되고 벽이 얇아 보일러를 틀어도 냉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전달돼 추위로 힘들었다”며 “일주일에 한 번은 대피소로 꼭 오려고 한다”고 했다.

밤추위 대피소를 찾는 손님들은 아침이면 방 씨와 백 씨의 손을 꼭 잡고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고 한다. 백 씨는 “행여나 주민들이 다시 찾아오는 걸 주저할까봐 자주 와달라고 거듭 당부한다”고 전했다.

● 종로 남대문 등 4곳에서 2월 말까지 운영
하남사우나를 비롯해 밤추위 대피소는 쪽방촌 주민이 많은 서울역과 종로, 남대문, 영등포 권역 등 총 4곳에 마련돼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해당 지역 일대에 위치한 ‘쪽방상담소’를 방문해 밤추위 대피소 이용권을 신청하거나 수령하면 된다. 매달 최대 4번 이용할 수 있으며 보일러가 없거나 난방 여건이 열악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이 우선 지원 대상자다. 대피소별로 매일 30명에서 65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서울시는 밤추위 대피소로 운영하는 목욕탕 사업주를 위해 영업 손실 보전책을 마련했다. 인건비와 난방비 등 추가 비용에 대해 지원한다.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겨울밤 쪽방촌 주민들이 난방비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며 “주거 취약계층인 쪽방촌 주민에게는 겨울 추위가 재난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