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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외쳐도 답 없는 화장실 비상벨

입력 | 2024-01-12 03:00:00

용인-동두천시 공중화장실 136곳
미작동-연결 불량 등 239건 적발
전문가 “범죄 예방책, 철저히 관리”



경기도민 감사관이 지난해 말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공중화장실 내 비상벨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어, 여기 비상벨을 눌러도 경찰서와 연결이 안 되네요.”

이상주 경기도 행정감사팀장은 지난해 11월 말 도민 감사관들과 함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공중화장실을 점검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안전에 위협을 느낄 때 긴급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은 것. 지난해 7월 개정된 ‘공중화장실법’상 지방자치단체는 공중화장실에 의무적으로 비상벨을 설치하고 연 2회 이상 정기 점검을 해야 한다. 이 팀장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용인시에 비상벨 수리를 요청하고, 행정안전부에는 비상벨 관련 예산을 반영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 타 지역 경찰서로 연결되고, 비명 감지 못하고…


경기도는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용인시 처인구와 동두천시 공중화장실 136곳을 대상으로 비상벨 작동 상태 등을 점검한 결과 239건의 부적합 사례를 적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점검에는 경기도 감사관실 직원과 도민 감사관 20명이 참여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경찰의 협조를 받아 음성인식 양방향 비상벨의 정상 작동 여부와 유지 관리 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점검 결과 공중화장실 26곳의 비상벨 전원이 꺼져 있거나 경찰 또는 관리기관에 연결되지 않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용인시 능말 근린공원의 경우 관내 경찰서가 아닌 전북경찰청으로 연결돼 시정조치 했다”고 말했다.

또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소리에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거나 100dB(데시벨) 이상의 소리에만 작동한 경우도 45건으로 조사됐다. 대학생 김모 씨(25)는 “경찰에 자동으로 신고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공원 화장실에 괴한이라도 들이닥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밖에 △양방향(경찰관과 직접 통화 가능) 비상벨 미설치 26건 △비상벨 설치 장소 부적정(대변기 칸막이 내 미설치) 7건 △경광등·경고문·보호덮개 미설치 126건 △경광등 고장 9건 등 총 239건이 적발됐다. 용인시 관계자는 “공중화장실 비상벨 설치·관리 인력이 1명뿐이라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지적 사안은 보완하고 있으며 비상벨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공중화장실 비상벨 10곳 중 3곳만 설치


경기도내 1만1500여 곳의 공중화장실 중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4053곳(35.2%)에 불과하다. 도내 31개 시군 중 안양시 등 22개 시군에서는 비상벨 관련 설치 조례를 아직 개정하지 않았다. 경기도 관계자는 “조례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곳은 신속히 완료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범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선 실질적인 대응 조치로 이어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비상벨 설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범죄 발생 시 지자체의 초동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 개선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일선 시군 공중화장실 비상벨 설치를 위해 행안부에 예산 22억 원을 요청했다. 또 비상벨의 이상 음원 감지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건의했다. 이희완 경기도 감사총괄담당관은 “공중화장실 비상벨은 범죄와 안전사고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예방책”이라며 “도내 모든 공중화장실 비상벨이 철저히 관리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