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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의무 유지가 우려되는 이유[동아시론/이창무]

입력 | 2023-12-28 23:42:00

정부 공언에도 야당 반대로 불발된 실거주 폐지
갭투자 막지만 보통의 분양자들 피해 우려도
가격 급등기 도입된 규제들의 유지 재고해야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가 시급했던 작년 말 시장 상황을 돌이켜 보면 2022년 중반 이후 반년 만에 서울시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20% 이상 급락하고 주택시장 경착륙에 대한 우려 속에 서울 시내 아파트도 분양이 순조롭지 못한 시기였다. 정부는 분양시장발 리스크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는 경착륙을 막기 위해 2023년 연초 1·3 부동산대책을 통해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기간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효과로 관심의 초점이었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분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서울시 아파트 시장은 그달부터 바로 반등을 시작하여 조심스러운 상승세를 1년 가까이 이어갔다. 하지만 이런 시장 상황의 개선은 입법 과정이 필요한 실거주 의무 기간 폐지를 지연시키고 있어 정부의 공언을 믿고 분양을 받은 가구들의 시름이 깊어져 가고 있다.

정부의 1·3 대책 덕분에 주택시장 경착륙 위기는 잠시 벗어났지만, 꾸준히 진행되었어야 할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흐름은 가격 재급등을 우려하는 정부의 조심스러운 행보로 지지부진해졌다. 결국 정상적인 투자 주체들의 손발이 여전히 묶인 주택시장은 그리 강한 회복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한된 거래량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다 10월 들어 서울시를 포함한 주요 지역의 아파트 실거래가지수 하락으로 더블딥을 우려케 하는 시장 상황으로 급변했다. 우려스럽게도 고금리와 건설단가 급등으로 중소규모 건설사들의 부도가 늘어나고, 관련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표면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자본 갭투자와 전세사기로 국민 마음이 많이 상했다.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반대하는 야당의 행보가 명분을 잃지 않는 이유다. 관련 아파트 수분양자들이 무주택자임에도 허용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싫든 좋든 임대인이 누릴 수 있는 갭투자의 장점이 있었기에 전세라는 임대계약 제도가 존속되어 왔다. 전세 임차가구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주거비로 강제 저축을 통해 자기 자산을 늘려갈 수 있었다. 좀 더 적극적인 무주택자는 조금은 과하다고 할 수 있는 로또 아파트를 분양받아 전세 놓고, 돌려줄 전세금을 쌓아가는 주거 사다리를 타려고 시도했다. 성공적이라면 차후 번듯하게 자기 재산이 된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행복감을 즐길 수 있다.

전세 주택의 공급자는 다주택자가 주류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이 소유한 주택은 전세 놓고, 자신은 다른 집에 전세 들어 사는 1주택 소유가구인 ‘분리가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1가구 1주택 갭투자 가구다. 서울시에는 그런 분리가구가 전체 임차가구의 약 10%에 달한다. 서울시 임차가구의 절반 정도가 전세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리가구가 전체 전세주택의 20%를 공급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1주택자의 갭투자를 통해 공급되는 전세주택이 국내 임대시장의 작동에 빠질 수 없는 기능을 해 왔다. 그래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입주가 시작되면, 그들이 내놓은 전세 물량으로 인해 주변 시장에 전세가 하락이 발생하곤 했다. 향후 입주 물량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는다면 한동안 그런 아파트 전세가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실거주 기간 의무화는 가격 급등기 로또가 된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를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정하는 청약제도 때문에 파생된 규제이다. 청약제도는 분양가상한제에서 파생된 규제이고, 분양가상한제는 선분양제로 인해 파생된 벗어나야 할 규제이다. 선분양제도는 주택의 최종 소비자로부터 조달된 레버리지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려는 성장기 해법으로 도입된 틀이다. 그러나 신규 아파트의 수분양자 역시 전세라는 갭투자(레버리지)를 통해 구입자금을 조달해 왔다. 싫든 좋든 우리는 그런 과도한 레버리지의 연결고리를 구성하여 택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지어내고, 주거소비를 향상시키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그런 과도한 레버리지 연결구조에 부동산 PF까지 얹혀진 다중의 레버리지 구조를 껴안고 있다.

이런 심각한 사회적 레버리지 구조는 분명히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급진적이기보다는 안정기에 점진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그 최종 단계 소비와 연결된 전세를 부도덕한 갭투자라고 몰아붙여 배척할 때 어떤 반작용이 발생할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심각하게도 도급 순위 16위의 태영건설이 부동산 PF로 인한 유동성 문제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둔촌 일병’만이 아닌 여러 ‘일병’들을 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가격 급등기 도입된 규제를 덜어내는 정상화가 시급하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