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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정은]K팝 후배 가수에게 전한 원로가수 이미자의 조언

입력 | 2023-11-27 23:42:00

김정은 문화부 차장


올 1∼10월 K팝 음반 수출액이 3000억 원을 넘기며 연간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 기간 음반 수출액은 2억4381만4000달러(약 3183억 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20.3% 증가했다.

수년 전부터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상위권을 휩쓴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K팝 스타들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왔다. 올해 역시 BTS의 지민과 정국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등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정상을 밟는 등 K팝 스타들이 세계에서 저변을 넓혔다. K팝 가수들의 활약상을 볼 때 음반 수출액 최고액 기록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올해로 데뷔 64주년을 맞은 가수 이미자 씨(82)를 이달 초 인터뷰했다. 대중문화인 최초로 지난달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그는 한국 가요계에 많은 역사를 써내려간 인물이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뒤 64년간 560여 장의 음반, 2500여 곡의 노래를 발표한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음반과 곡을 발매한 가수로 1990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02년엔 남한 가수 최초로 북한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데뷔 30주년이었던 1989년에는 대중가수에겐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최초로 콘서트도 열었다. 오늘날 K팝 스타들을 낳은 가요계의 토양을 다진 대표적 인물인 셈이다.

그는 60년 넘게 가수로서 롱런 할 수 있었던 비결, 전통가요에 대한 신념 등을 인터뷰 내내 특유의 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K팝 후배 가수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냐는 질문에 그의 목소리 톤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그는 작정한 듯 “요즘 가수들은 가사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가끔은 자막을 보지 않으면 우리말인데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며 “슬픈 가사인데 웃으며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K팝을 향한 쓴소리보다 칭찬이 넘쳐나는 현실 앞에 원로 선배의 입에서 나온 지적은 신선했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요즘 노래처럼 말하듯이, 발음을 뭉개고, 포인트 단어만 힘줘서 노래를 부르라.” 최근 JYP 엔터테인먼트 수장인 가수 박진영이 KBS 예능 프로그램 ‘골든걸스’에서 걸그룹 프로젝트 데뷔를 준비 중인 가수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에게 주문한 내용이다. 인순이는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저희 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불러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발음을 뭉개라’ ‘입을 작게 벌려라’라고 하더라”며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어쩌다 한국인조차 못 알아들을 정도의 부정확한 가사 전달력이 K팝의 특징이자 멋이 돼 버렸을까. 세계를 겨냥한 K팝 중에서는 가사가 영어로만 돼 있거나 국적 불명의 모호한 단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글로벌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흐르는 멜로디에 얹혀진 가사로 대중의 삶을 위로하던 옛 대중가요가 가진 원초적 힘이 새삼 그립다. 화려한 성과 앞에 가려진 근본을 강조한 원로가수 이미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 이유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