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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北, 레드라인 넘어”…9·19군사합의 효력정지 착수

입력 | 2023-11-21 23:59:00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 준비 동향 등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북한이 당초 예고한 기간(22일 0시~12월 1일 0시)보다 앞당겨 군사정찰위성을 기습 발사하면서 대통령실과 정부 당국은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북한이 1, 2차 발사때와 같이 이번에도 예고 기간 첫날인 22일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군 소식통은 “22일부터 2~3일간 서해 동창리 위성발사장 일대의 기상이 좋지 않다고 예보됨에 따라 북한이 예고 기간보다 앞당겨 발사 단추를 누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 정부와 군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만큼 9·19합의를 현 상태로 유지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군 당국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활용한 고강도 군사 도발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영국 순방에 동행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현지 브리핑에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시 9·19남북군사합의 효력 일부 정지와 관련해 “국가안보 등 중대 사유가 발생하면 합의 일부나 전체 효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조치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북한에 경고한 대로 전방 지역의 비행금지구역부터 우선 해제하는 등 9·19 합의의 단계적 효력 정지 절차에 돌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프랑스 순방 후 귀국한 뒤 국무회의를 열어 9·19 합의의 효력정지를 의결한 뒤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찰위성 확보에 집착하는 것은 한미에 절대적 열세인 정찰능력을 만회하려는 포석이 깔려있다. 정찰위성과 유·무인 전략정찰기 등을 갖춘 한미 당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와 수뇌부 동향 등을 손금보듯 들여다볼수 있지만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정찰위성이 목표 궤도(500km 고도의 태양동기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할 경우 이 위성은 하루 서너 차례 한반도를 지나며 괌과 주일미군 기지에 배치된 미 전략자산의 전개 여부, 주요 표적의 배치·이동 상황까지 볼 수 있다.

한국의 주요 시설과 군 기지 위치 등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유사시엔 전술핵을 실은 탄도미사일을 더 정확하게 날려 핵 타격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 또 북한의 위성 발사체 기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으로 금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다. 군 관계자는 “핵 타격용 신형 유도 무기와 여러 기의 정찰위성을 통합 운용하면 대남 핵 공격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북한 정찰위성은 우리 군이 쏴 올릴 정찰위성보다 성능면에서는 몇 수 아래다. 1차 발사(5월 31일) 실패 당시 군이 수거한 북한의 만리경-1호(정찰위성)의 해상도는 수 m급으로 군사적 효용도가 미미한 수준이었다. 우리 군 정찰위성의 해상도는 30cm급이고, 미 정찰위성의 해상도는 10cm급이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러시아가 북한에 직접 인력을 파견해 정찰 위성 기술 진전에 결정적 도움을 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서브미터급(가로세로 1m 미만의 물체 식별) 해상도의 정찰위성을 개발해 10기 이상을 올릴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저궤도는 물론 중궤도, 정지궤도용 위성까지 다수 올리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