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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재영]‘양치기 소년’ 카카오, 또 한 번의 반성

입력 | 2023-11-20 23:48:00

문제 생기면 “사회적 책임 통감” 반성
반복되는 사과,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김재영 논설위원


“○○○는 팔아도 양심은 팔지 않겠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런 문구를 내건 가게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식의 말을 자주 쓰는 업종이 서너 곳 있다. 구태여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소비자들로부터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는 업종들이다. 신뢰는 그럴듯한 말이 아닌 행동에서 나오는 법이다.

유독 사회적 책임과 신뢰를 자주 강조하는 카카오도 역설적으로 불신에 휩싸여 있다.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수사의 칼끝이 조여오자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최근 직접 나섰다. 17년간 길러온 수염까지 밀어버리고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했다. 그룹 전체의 준법·윤리경영을 감시할 외부 감시 기구도 구성해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현 상황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카카오는 이런저런 잡음으로 늘 위기였다. 독점이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플랫폼 기업들이 으레 겪는 숙명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지난해부터 불거져 나온 사건 사고는 도를 지나쳤다. 지난해 초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 한 달 만에 한꺼번에 900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버린 ‘주식 먹튀’가 뒤늦게 알려진 게 시작이었다. 정상적인 기업에선 회사의 성장을 믿고 투자한 주주들의 뒤통수를 이런 식으로 치는 일은 없다.

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대규모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이 자체 데이터센터도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화재는 워낙 예상을 못 했다” “전체 셧다운에 대비한 훈련은 한 적이 없다”는 경영진의 말은 황당했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혁신 기업보단 구태 기업에 어울리는 사법 리스크까지 발생했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방해하기 위해 2400억 원을 투입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올렸다는 의혹을, 카카오모빌리티는 3000억 원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카카오는 바짝 엎드렸다.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시 한번 통감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시작한다. 2년 전 “성장에 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고 했던 김 센터장은 최근엔 “카카오에 요구하는 사회적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책임 경영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재발 방지와 상생을 약속하고 조직 개편에 나선다. 2021년 11월부터 2년간 카카오 경영진은 5번이나 교체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속은 흐지부지됐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문어발 확장의 비판을 받고 계열사를 100곳 이하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105개에서 166개로 늘었다. 지난해 2월엔 5년간 1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정부에 약속했지만, 올해 상반기 카카오의 직원 수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었다. 올해 3월 ‘주식 먹튀’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남궁훈 전 대표는 “주가가 회복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했지만 7개월 뒤 카카오를 떠날 땐 스톡옵션 행사로 94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계열사별 자율·독립 경영을 표방하며 어떻게든 몸집을 불려 상장시키는 것만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성장 위주 전략의 결과였다.

김 센터장은 2020년 3월 카카오톡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전 직원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카카오의 지난 10년이 ‘좋은 기업’이었다면 향후 10년은 ‘위대한 기업’으로 이끌고 싶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상식적인 기업’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이번만큼은 사법 리스크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조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한국인이라면 카톡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국민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