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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2회-항암 치료 24회 견디고 대장암-간 전이 모두 완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입력 | 2023-11-18 01:40:00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간 전이된 대장암 최희원 씨
장염-변비-체중 감소 동시에 나타나… 혈변-복통 겹친 후 대장암 3기 진단
대장암 수술에 항암 치료 마쳤는데, 간에 전이…대장암 4기로 병기 조정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하고 뭐든 먹어… “환자의 긍정적 자세가 완치 특효약”



10년 전 대장암에 걸린 후 간으로 전이돼 최종적으로 4기 판정을 받았던 최희원 씨(오른쪽)는 2회의 수술과 24회의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암에서 벗어났다. 최 씨가 대장암 수술을 집도했던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를 만나 건강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최희원 씨(47)가 30대 후반이던 10년 전. 어느 날 만난 지인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당시 최 씨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실제로 체중이 짧은 시간에 5kg이 빠졌다. 최 씨는 다이어트가 효과를 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무렵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동네 의원에 갔다. 장염 같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약효는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르면 저절로 증세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드문드문 의원에 갔고, 그때마다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도 제대로 용변을 보지 못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던 변비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변비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갑자기 체중이 빠진 것이나 변비가 심해진 것은 모두 대장암으로 인해 나타난 증세였다. 하지만 동네 의원 의사도, 최 씨도 대장암일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대장암 수술 후 항암 치료 돌입

어느 날 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 무렵부터 복통의 강도도 심해졌다. 배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제야 최 씨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최 씨의 대장암 수술을 집도한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당시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심한 변비, 혈변, 통증이 나타난다면 암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최 씨의 경우 이런 증세가 나타나기 1, 2년 전에 이미 대장암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암은 나이 들어서야 생기는 걸로만 알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맞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젊은 환자가 증가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장암은 60대 이후에 주로 걸렸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집에서 가까운 인천성모병원으로 갔다. 최 씨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림프샘으로 전이된 대장암 3기 진단이 떨어졌다. 서둘러 수술해야 하는 상황. 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하기로 했다(이 교수는 나중에 서울성모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2013년 8월, 최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이 교수는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3시간 정도 소요됐다. 암은 대장의 중간 부위인 결장에 있었다. 이 부위를 제거하고 대장의 위와 아래쪽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대장과 연결된 림프샘도 절제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은 완벽하게 제거된 것 같았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항암 치료는 2주마다 한 번씩, 꼬박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진행됐다.

● 대장암 이겨내니 간에 전이
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나 싶었다. 안심하려던 찰나, 최 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개월 후였다.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간에서 암이 발견됐다.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이다. 암이 원격 전이됐기에 병기는 대장암 3기에서 대장암 4기로 조정됐다.

이 교수는 “3기 대장암의 경우 수술을 끝낸 후 1, 2년 이내에 전이가 생기는 확률은 30∼40% 정도”라고 했다. 60∼70%는 재발하지 않고 완치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최 씨는 행운보다는 불운에 더 가까운 사례인 셈이다. 최 씨는 “젊은 나이에 암이 생겨서 전이가 생긴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죽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간으로 전이된 암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에 돌입했다. 수술에 앞서 선행 항암 치료를 3회 진행했다. 이어 암이 있는 간의 오른쪽 부위를 제거하는 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4, 5시간이 소요된 큰 수술이었다. 이번에도 수술은 잘 끝났다. 다시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추가로 9회의 항암 치료를 마쳤다.

그 후로 5년이 지났다. 2019년 9월, 대장과 간에서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로소 최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암이 재발할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암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재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대장암의 경우 일단 완치하면 다른 암에 비해 재발 확률이 낮다. 만약 전이됐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컨디션만 잘 유지하면 다시 완치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최 씨는 매년 병원을 찾아 몸 전체를 살피는 CT 검사와 종양표지자 검사를 받는다. 3년 혹은 4년 간격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도 한다. 이렇게 하면 설령 암이 재발 혹은 전이되더라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 운동하며 24회의 항암 치료 버텨
항암 치료를 받으면 속이 좋지 않아 음식 섭취가 힘들어진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권하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는 환자들이 오히려 드물다.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엇이든 먹으려고 했다. 과일을 자주 먹었다. 팥이 든 도넛이 그나마 괜찮아 1주일 내내 도넛만 먹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왕이면 영양이 더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좋았겠지만, 어떻게든 음식을 먹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운동도 암 환자들의 완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최 씨도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2시간씩 집 주변을 걸어 다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전반부 12회의 항암 치료를 수월하게 견딜 수 있었다.

간으로 전이된 후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술 전에 3회, 수술 후에 9회를 받았다. 다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경우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최 씨도 그랬다. 게다가 항암제는 더 강했다. 손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왔다. 이를 견딜 수 없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버렸다.

메슥거림도 더 심해졌다. 이번에도 먹는 게 고역이었다. 암에 걸리기 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는 아예 먹을 수 없었다. 밥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래도 최 씨는 참고 먹었다. 이때는 주로 사과와 바나나, 고구마를 먹었다. 양배추도 데친 후 갈아서 먹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 5년이 지난 후까지 음식 냄새에 민감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상을 되찾았다.

●“긍정적 태도가 치료에 도움”
완치 비결을 묻자, 이 교수는 “환자인 최 씨가 아주 밝고 긍정적이다. 그런 면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단다.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울면 아이들이 속상해할 테니까. 이후 최 씨는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찡그리거나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암 환자란 사실조차 몰랐다.

최 씨는 또 고치면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최 씨는 “수술하고 치료하면 될 것이고,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간 전이 판정을 받았을 때는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간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도 환하게 웃었다. 최 씨가 너무도 의연해서 당시 의사가 “혹시 환자 당사자 맞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밝은 성격의 최 씨이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암이 완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암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평생 경계한다는 뜻이다. 최 씨는 “완치됐다고는 하나 무서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때문에 매일 3시간씩 집 주변에 있는 산을 오르며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 유발 요소인 비만을 막기 위해서다.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을 때 자녀가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은 2∼3배 높아진다. 최 씨는 이 점이 신경이 쓰인다. 그 때문에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입학 선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켰다. 이 교수는 “대장암 환자였다면 최 씨처럼 자식들을 20대 때부터 관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