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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당신의 아픔이 당신이 되지 않길

입력 | 2023-11-11 01:40:00

◇더 기프트/에디트 에바 에거 지음·안진희 옮김/324쪽·1만9800원·위즈덤하우스




1944년 봄 헝가리에 살던 열여섯 살의 저자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부모님은 도착한 날 가스실에서 살해됐다. 나치 친위대 간부를 위해 강제로 춤을 춰야 했던 저자는 속으로 어머니의 조언을 생각하며 견뎠다.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

수용소의 생지옥을 견디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시체 더미에서 구조된 저자는 쉰이 넘은 나이에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40년 이상 미국에서 내담자들의 심리를 치료해 왔다. 그런 저자가 ‘해로운 생각을 멈추고 삶을 선물로 바꾸는 법’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울었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당장 생존이 다급했기 때문이다. 풀려난 뒤에도 홀로코스트에 관해 말하는 걸 꺼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 회피했던 감정들은 나중에 닥쳐왔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홀로코스트에 관해 묻자 남편은 저자가 아우슈비츠에 있었다고 알려줬다. 저자의 가슴이 그제야 무너져 내렸다. 종전 30여 년이 지난 뒤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해서도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회피했던 감정들과 마주한 뒤엔 몽땅 밖으로 쏟아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연약한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모든 현실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좋다”며 “감정은 감정일 뿐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상실, 범죄 등을 경험한 이들을 상담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통해 ‘나를 제외한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 ‘내면의 대본은 다시 쓰일 수 있다’, ‘분노 안에는 해소되지 않은 슬픔이 있다’, ‘오직 나만이 나를 해방해줄 수 있다’ 등 치유를 위한 열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내 고통은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악의 감옥은 나치가 나를 가두었던 감옥이 아니다. 최악의 감옥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감옥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