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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국경 언제 열릴지 몰라 5, 6번 오가… 기름 동난 순간 열려”

입력 | 2023-11-04 01:40:00

한국인 일가족 5명 목숨 건 탈출
“친척들 아직 남아… 마음 무거워”



가자 탈출뒤 차로 10시간 달려 韓대사관저 도착 중동전쟁 발발 후 26일간 가자지구에 갇혀 있다 2일(현지 시간) 이집트 국경을 통해 탈출한 한국 교민 일가족 5명이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타고 온 승합차 안에서 안도감을 표하고 있다. 가자지구 국경을 넘은 이들은 10시간가량 차를 타고 420km를 이동해 한국대사관저에 도착했다. 차량 문이 열리자 생후 7개월 된 막내딸이 아버지 무릎 위에서 천진하게 뛰어놀았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가자지구 내 통신이 막혀 탈출 직전까지도 우리 가족이 출국 허용 명단에 있는지 확인조차 어려웠다.”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발발로 26일 간 가자지구에 갇혀 있다 2일(현지 시간) 이집트 라파 국경을 통해 탈출한 한국 교민 일가족 5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밤늦게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해 기자와 만난 이들은 “언제든 소리 소문 없이 폭격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뿐이었다. 국경에 마중 나온 대사관분들을 보니 부모님을 본 것처럼 눈물나게 반가웠다”고 말했다. 한국에 귀화한 팔레스타인계 남편(43)과 한국에 살다가 7년 전 가자지구 시댁으로 이주했던 최모 씨(44) 부부는 첫째 딸(18), 둘째 아들(15), 생후 7개월 된 막내딸과 함께 탈출했다.

최 씨 가족은 전쟁 발발 사흘째인 지난달 10일 피란길에 올랐다. 최 씨는 “남부도시 칸 유니스에 있는 지인 거처로 피란했는데 언제 국경이 열릴지 몰라 온 가족이 (차로 30분 거리인) 국경까지 5, 6번을 오갔다. 연료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갖고 있던 기름을 모두 소진하고 마지막으로 국경을 찾은 순간 국경이 열렸다”고 했다. 현재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한국행을 준비하는 최 씨는 “시댁 식구와 친척들은 아직 가자에 있다. 저희만 도망을 나온 것 같다는 죄책감, 미안함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폭격에 소리소문없이 죽겠다 싶어… 겨울옷만 급히 챙겨 탈출”


[중동 전쟁]
가자 탈출 교민 인터뷰
불 피울 연료없어 캔음식으로 연명
통신 마비돼 마지막까지 조바심… "韓정부가 구하러 올거라 믿었다"
“병원, 종교시설, 학교, 주거지역 등 (이스라엘이) 공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7년 전 가자지구에 정착해 살아온 최 씨 가족에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낯설지 않다. 최 씨는 “과거엔 이스라엘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특정 군사시설을 노렸는데 이번엔 정말 무차별적”이라며 “이번엔 폭격 첫날부터 우리 가족이 사는 곳 코앞에서도 위협이 느껴질 만큼 직감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았다”고 했다. 가족을 대표해 인터뷰에 응한 최 씨는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관련 시설이 각 건물 지하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평소 드나들던 동네 건물일 뿐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 “사진으로 보는 참혹함 그 이상”

최 씨 가족의 26일간의 피란 생활은 처참했다. 가족들은 “가자지구 밖에서 사진, 영상으로 보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참혹함은 강도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폭격의 공포를 버티던 이들은 3일 뒤인 10일 피란길에 올랐다. 이스라엘군이 ‘대피하지 않으면 당신들 책임’이라는 식으로 대피령을 내리자 언제든 폭격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최 씨는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소리 소문 없이 폭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뿐이었다”며 “온 가족이 겨울 옷만 몇 벌 챙겨 급하게 남쪽 ‘텔 엘 하와’ 지역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고 했다.

하지만 점차 폭격 지역이 넓어지면서 시댁 식구들과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 유니스에 있는 지인 집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얼마 뒤 지인으로부터 “당신 가족이 살던 가자시티 인근 집도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자지구의 물자 보급이 차단됐던 데다 연료도 없어 최 씨 가족은 불로 조리할 필요가 없는 콩 캔, 토마토 캔 등을 먹으며 연명했다. 가자지구 내 친척, 친구 및 외부와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휴대전화도 꾸준히 충전해야 했다. 최 씨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차량용 배터리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충전하거나 태양열 발전기를 가진 사람에게 부탁해 돈을 주고 보조배터리를 충전해 왔다”며 “언제 탈출할 수 있을지 알려면 계속 뉴스로 전쟁 소식을 알고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의 책임을 놓고 가자지구에선 유언비어도 확산되고 있었다. 하마스가 선제공격에 나선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묻자 최 씨 부부는 “누가 전쟁을 좋아하겠나. 다 안 좋아한다. 식민주의가 끝나야 한다”면서 “이스라엘군이 자기네 명절이 끝나면 가자지구를 공격할 것이란 사실을 하마스가 예상해 선제공격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거기 주민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고 전했다.

● “생후 7개월 막내딸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것”

2일 마침내 한국 국적자는 이집트와 연결된 남부 라파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최 씨 가족은 출국이 지연되거나 막힐 수 있다는 조바심을 떨쳐 내기 힘들었다. 복구되는 듯한 통신도 탈출 직전 마비가 됐다. 최 씨는 “전화도 20번 걸면 운 좋게 한 번 연결될 정도로 불안정했다”고 했다. 대사관 관계자도 “탈출 가능한 외국인 명단이 어떤 기준으로 발표되는지 누구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최 씨 가족은 국경에서 한국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한국 정부가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이 확고했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생후 7개월 된 막내딸을 피란길에 데리고 다니는 게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최 씨는 “오히려 우리에겐 희망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 통에 웃을 일이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웃으면 저희도 따라 웃을 수 있었거든요.”

평소 팔레스타인의 일상을 전하는 유튜버로 활동하던 최 씨의 큰딸은 전쟁 발발 후 영상을 올리며 참상을 전하고 있다. 그는 “아직 제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곳에 있다. 앞으로도 전쟁의 아픔을 알리는 영상을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