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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뒤 반년간 강냉이만… 엉덩이엔 욕창”

입력 | 2023-10-27 03:00:00

탈북민들이 전한 집결소 인권침해
“교도관 허락없인 화장실도 못가고
동상 걸려 양쪽 엄지발톱 빠지기도
기절하면 찬물 끼얹고 다시 고문”




‘탕탕.’

머리가 철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교도관이 철창 사이로 수감자의 머리채를 잡아끈 것. 철창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엔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벌 받듯 두 팔을 들고 있었다. 몸엔 시퍼런 멍도 들어 있었다.

2018년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보안국 집결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탈북민 김명화(가명) 씨도 이곳에 반년이나 갇혀 있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오후 10시 부동자세로 꿇어앉아 벌을 받았다”고 했다. 한겨울 감옥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얇은 깔판을 깔고 앉았지만 냉기는 가시질 않았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긴 수감자들은 곳곳에서 고통을 호소하며 훌쩍였다. 반년 동안 강냉이로 연명한 양강도 출신의 다른 여성은 볼이 움푹 파인 얼굴로 허공만 바라봤다.



● “기절하면 깨워서 또 고문”


김 씨는 지난해 6월 국내 인권단체인 통일맘연합회와의 면담에서 보안국 집결소에 있을 당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힘들게 털어놨다. 집결소는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탈북민들이 고향의 보위부로 이송되기 전까지 구금되는 곳. 중국 선양에서 체포돼 2018년 강제 북송된 후 이곳에 감금돼 노동교화형을 받았던 김 씨는 몇 년 뒤 다시 탈북에 성공했다.

북-중 국경 봉쇄가 느슨해지면서 이달 9일 탈북민 500여 명이 북송되는 등 중국의 강제 북송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번에 북송된 탈북민들도 잔혹한 고문 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나온다.

2010년 북송된 탈북민 정수목(가명) 씨는 북한 양강도 보위부에서 매일 교도관에게 나무 몽둥이로 얻어 맞았다. 높이와 너비가 5cm 수준으로 ‘오승오각자’라고 불리는 굵은 나무 몽둥이였다. 교도관의 허락 없인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허락을 받지 못하면 바지에 소변을 봐야 했다. 추운 감옥 안에서 동상에 걸리길 반복하다 엄지발톱 두 개가 모두 빠졌다.

2011년 북송된 탈북민 김선미(가명) 씨도 북한 보위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에 김 씨가 정신을 잃으면, 교도관은 찬물을 끼얹어 깨우곤 했다.



● 中, 국제협약 무시하고 북송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는 건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입국 범죄자’로 보고 있어서다. 하지만 강제 북송 경험을 가진 탈북민들이 말하는 북송 이후의 삶은 생명을 위협받는 끔찍한 난민의 삶에 가깝다. 탈북 경위를 조사받는 과정에서 탈북민들은 강제구금은 물론이고 폭행·고문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고, 고통받다 숨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국에 가려 했단 의심을 받는 탈북민들은 정치범수용소에 구금되거나 처형당한다.

유엔난민협약 제33조는 ‘난민을 그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중국은 이 협약 가입국이다. 중국이 1988년 가입한 고문방지협약 3조도 ‘어떤 국가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또는 인도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26일 YTN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이 탈북민을 북한으로 대거 이송한 것과 관련해 “강제로 북송한 건 잘못된 일”이라며 “지난번 정부에선 그런 일이 생겨도 별로 밖으로 얘기를 안 했지만 우리는 할 말은 한다. 그래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북송된 탈북민들은 조사 과정에서 고문·폭행을 당할 가능성은 물론이고 참혹한 인권 유린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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