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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동시다발 침투에 이스라엘 ‘아이언돔’ 속수무책

입력 | 2023-10-08 20:48:00

하마스, 축제장 군중 향해 돌진해 총격…피흘리는 여성 머리채 잡고 끌고 가기도




“도로에 시체가 수북히 쌓여 있다.”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 거주하는 주민 샬로미 씨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다음 날인 8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곳곳에 시체와 불에 탄 자동차가 가득하다”며 참혹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곳곳에서 숨진 가족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시민들, 부모를 잃고 하염없이 우는 아이 등이 목격됐다.

이스라엘 본토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이후 50년 만에 최대 규모로 뚫린 것은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이번 공격의 사전 인지에 실패한 데다 유대교 명절 ‘수막절(수코트·6일)’ 직후 안식일인 7일 새벽에 공격이 이뤄진 탓으로 풀이된다. 또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돔’이라는 첨단 방어망에도 수천 발의 로켓을 동원한 기습 공습을 한 데 더해 지상과 해상, 공중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무장대원이 침투하자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하마스는 시기와 방식에서 허를 찌른 비대칭·기습전으로 이스라엘에 치명타를 안긴 셈이다.


● 패러글라이더 타고 국경 넘은 대원

하마스 패러글라이딩 전투원들이 이스라엘 가자지구 국경을 넘는 장면이 이스라엘 소셜미디어에 올라 있다. 스카이뉴스 영상 갈무리


외신들에 따르면 하마스는 수천 발의 로켓포를 집중적으로 퍼부으면서 이스라엘군을 혼란시킨 후 가자지구 남쪽 국경의 이스라엘 마을로 전동 패러글라이더를 탄 대원들을 침투시켰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여러 명의 하마스 대원들이 전동 패러글라이더로 이스라엘 국경 장벽 위로 날아가는 모습이 담겼다.

동시에 하마스 대원들은 픽업트럭, 오토바이, 모터보트 등을 이용해 북쪽과 동쪽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내 20여 개 마을과 군기지에 침투했다. 이후 최소 수십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을 붙잡아 가자지구로 돌아갔다.

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남동부 네게브 사막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마스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혼비백산하며 사막을 뛰어다녔다. 현지 언론 하레츠는 당시 현장을 ‘학살’, ‘전쟁터’ 등으로 묘사하며 오토바이를 탄 하마스 대원들이 군중 속으로 돌진해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이 축제에 참가했다 실종된 500여 명을 찾기 위해 명단을 공유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스라엘 여성이 하마스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YNETNEWS 캡처.

또한 하마스 대원들은 총기를 들고 민간인 거주 지역을 이잡듯 뒤지며 사실상의 민간인 사냥에도 나섰다. 이날 X(옛 트위터) 등에는 이들이 여성, 노인, 어린이 등 이스라엘 민간인을 강제로 끌고 가는 영상이 확산했다.

대원들은 피를 흘리는 민간인 여성의 머리채를 잡은 채 지프에 강제로 태웠다. 이 여성의 양 팔은 케이블 타이로 묶여 있었다. 또 다른 대원들은 “나를 죽이지 마세요”라고 애원하는 또 다른 여성을 억지로 오토바이에 태워 떠났다. 일부 대원은 이스라엘군 탱크에서 이미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병사를 끌어내 내동댕이쳤다.


● 정보전 완패한 이스라엘 

하마스는 시기와 방식에서 허를 찌른 비대칭·기습전으로 이스라엘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번 사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력과 기술력을 자랑해온 모사드(해외 첩보), 신베트(국내 첩보)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유대교 안식일 새벽을 기해 수천 발의 로켓포 세례를 퍼붓는 동시에 하마스 대원들이 전동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가자지구로 침투하기까지 모사드 등은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기만정보나 역정보 공작에 이스라엘이 당한 것으로밖에 볼수 없다”고 지적했다. 적의 대규모 도발 징후를 놓친 정보전의 실패가 주요 패착이라는 얘기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돔 또한 대량 포격 방어엔 한계를 드러냈다. 이스라엘은 그간 하마스의 로켓포탄 공격에 아이언돔의 요격률이 90%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수천 발을 퍼붓는 이번 물량 공세엔 속수무책이었다.

하마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음악 축제 참가자들. 인스타그램 한 영상 캡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력에도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CNN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기습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평한 이유다. 이 매체는 조만간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이 이번 사태에서 중요 정보를 왜 놓쳤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망신을 당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지상군 공격을 벌여 점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7개 지역 주민에게 대피 명령을 내려 전면적인 군사작전 전개를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약 8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했던 2014년 하마스와의 분쟁 때보다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 하마스 또한 추가 공격으로 응수하는 ‘피의 보복’ 악순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비대칭 전력, 기습 도발” 한국에도 시사점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우리 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휴전선 인근에 장사정포 1000여 문을 배치한 북한은 시간당 1만여 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다. 또 레이더 포착이 힘든 수백대의 저고도 침투용 AN-2기, 대규모 특수전부대, 각종 무인기까지 보유한 북한의 비대칭·기습전 능력은 하마스보다 몇배 우위로 평가된다.

군 소식통은 “하마스의 공격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뿐만아니라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기습도발 대비책을 철저히 점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