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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윤완준]‘윤석열표 이념론’ 사용법

입력 | 2023-09-22 00:00:00

“지금 탈냉전이라는 생각이 구태의연”
내 편 네 편 가르는 정치 도구는 안 돼



윤완준 정치부장


“지금은 탈냉전 시대가 아니다. (신)냉전 시대다. 이념이 필요 없는 탈냉전 시대라는 사고가 오히려 구태의연하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이념 드라이브’에 대해 야권이 “냉전적 사고”라고 비판한 건 잘못이라며 강조한 말이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경쟁이 바로 냉전의 핵심이라는 게 김 원장의 진단이다. 전략적 체제 경쟁은 가치와 체제, 군사, 경제 네트워크의 3대 경쟁이다. 중국은 지난해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중화민족 부흥”을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 등 민주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체제 경쟁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50년경에는 사회주의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 중국몽이다. 한중 간 경제 협력 속에서도 체제 이념 문제를 둘러싼 대립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미국 중심의 안보 네트워크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 기술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경고다. 좋든 싫든 이런 국제 현실을 인정하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세계에 분명히 밝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그것이 국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동북아 질서가 신냉전의 한복판임을 보여준다.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 온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로버트 L 칼린 연구원과 함께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글 한 편을 기고했다. 북-러 정상회담이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회담으로 김정은이 “1990∼2019년 30년간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포기했다”고 썼다.

김정은과 푸틴은 군사협력을 전방위로 전개할 계획임을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선택은 단순히 상황이 절박해서가 아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북한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게 두 사람의 진단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7월 동해 북방한계선(NLL) 바로 위쪽에서 사상 처음 연합 해상훈련을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굉장히 주목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반도가 신냉전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권위주의 체제인지 따지는 것은 신냉전 질서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 현실의 엄중함을 짚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념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언어가 그런 현실을 진단해 국가 방향을 제시하는 걸 넘어 정치적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연 확장을 뜻하는 ‘산토끼’보다 전통적 보수층인 ‘집토끼’를 잡으라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많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과 싸우는 전사가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윤 대통령의 이념론이 대통령과 이념적으로 한 몸이 된 ‘내 편의 전사’만 키우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신냉전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로 사용하기를 바란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