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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잘 쉬고 있나요?

입력 | 2023-09-20 03:00:00

최근 불안 장애 환자 급증
예측 불가능성을 낮춰라



사진출처=pixabay


《휴식이 필요함을 알고는 있는데 막상 쉬려고 하니 불안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남들의 시선도 두렵다. 생각보다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다. 다양한 현실적인 이유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무시한 채 자신을 채찍질하며 강행군 중인 사람들이다.



불안 장애 유발하는 ‘스트레스’
제대로 쉬지 못하면 번아웃, 불안 장애,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우울증과 불안 장애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불안 장애 환자 수는 2017년 65만3694명에서 2021년 86만5108명으로 32.3%(연평균 7.3%) 늘어났다.

작년 9월 재단법인 청년재단은 총 5425명을 대상으로 ‘2030 청년의 불안과 우울감, 번아웃’ 지수를 확인하는 설문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최근 1년간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5425명 중 91.5%(4963명)가 ‘있다’고 답했다. ‘불안을 느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50.6%(1위)가 ‘불안감을 느낄 때 우울감이 함께 나타난다’고 답했다.

번아웃 테스트(1∼5점 체크)에서는 많은 청년이 높은 번아웃 지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5425명 중 △55∼64점 31.1%(1687명) △45∼54점 25.4%(1377명) △65점 이상도 24.8%(1345명)로 나타났다. 40점 이하 낮은 번아웃 지수로 응답한 비율은 17.7%(960명)에 그쳤다.

직장인이 많은 광화문. 살짝만 돌아봐도 주변에 조성된 쉼터가 많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잠시 커피 한잔 마시며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와 휴식 시간을 가져보자.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불안 장애를 겪으면 소화불량,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 질환적인 불안증은 잠을 설치고 공황장애처럼 이유 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갑자기 불안한 기분을 느낀다. 발작 증상과 함께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숨쉬기가 힘들다.

이러한 증상은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적응하기 위해 스테로이드계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분비되고 아드레날린 같은 자율신경계를 항진시키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가 과도하거나 만성적으로 지속될 때는 이러한 적응 메커니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안정해야 할 상황에서도 호르몬의 분비가 일어나 쉴 때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불안 증세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자제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스트레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몸이 변해 우리의 이성이 바른 판단을 하려고 해도 몸이 이미 이성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신과적으로는 이러한 상태를 ‘자기 통제력 상실’이라고 표현한다.

불안증에 걸리면 개인적인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물론 직장 생활에도 해가 된다. 대인 관계 기피로 인해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중요한 일일수록 손에 더 잘 잡히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불안 장애를 유발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스트레스다.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은 “병원에 오는 많은 환자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라며 “스트레스 발생 요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업무, 다른 하나는 직장 내 관계 문제”라고 말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업무 난도나 과도한 업무량이 문제일 수 있다. 또는 두 가지 모두 해당하기도 한다. 일이 바쁘고 어려우면 자기도 모르게 예민해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면서 날 선 말들이 오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관계와 업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안을 줄이려면 예측 불가능성을 낮춰야

이명수 원장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이명수 원장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정신보건 이사와 기획 홍보이사를 지냈다. 보건복지부, 서울시, 경기도와 함께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 예방을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심리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방식 중에는 ‘직무 긴장도’가 있다. 요구받는 직무의 양, 그 직무에 대한 본인의 결정권(직무 자립도)을 입체적이고 여러모로 측정·평가하는 방식이다. 직무 요구도가 높고 직무 자립도가 낮은 경우를 ‘고 긴장 집단’이라고 부르는데 고 긴장 집단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반대로 직무 요구도는 낮으면서 자립도가 높다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스트레스의 본질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이 원장은 “업무가 많고 힘들어도 예측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 지수는 그나마 낮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같은 업무를 요구받더라도 그것이 내가 예측했던 일이라면 스트레스의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기습 펀치는 나를 기절시킬 수 있지만 예측한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은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주말을 정리하면서 30분 정도 예측의 시간을 가져보거나 출근하면서 10분 정도 예측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불안과 긴장이 엄습해 올 수 있겠지만 능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불안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직장은 변수로 가득 차 있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온전한 쉼은 ‘자기 결정권’에 있다
쉼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피로를 해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퇴근하거나 휴가를 간다고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쉼은 육체적으로 일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현실의 고민에서 빠져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원장은 “쉼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힘은 자기 결정권”에 있다고 말한다. 일하지 않는 것, 또는 운동이나 레저 활동 등의 결정 권한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기 결정권적 관점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이 될 수 있다. 반면에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일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동기에 의해 이뤄지게 될 때, 그 일에는 쉼적인 요소가 있기도 하다.

이 원장은 “쉼이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말한다”라며 “온전한 휴식을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선택한 운동도 하고 싶은 것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변하는 순간, 쉼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고 싶은 것으로 놔둘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 도움 문헌: 이명수 원장의 ‘내 마음을 알고 싶은 날의 우울해방일지’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