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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압박 ‘상생금융’ 실적저조… 은행 “공기업도 아닌데” 불만

입력 | 2023-08-22 03:00:00

은행, 일부 상생상품 안내도 안해
“수천억 지원” 카드사, 실제론 수십억
금융당국, ‘횡재세’ 언급하며 압력




역대급 실적을 거두고 있는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의 ‘상생금융’ 실적은 기대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에서 내놓은 상생금융 상품 일부는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거나 생색 내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들의 자발적 호응이 시원치 않자 당국은 초과 이익에 대한 ‘횡재세’까지 언급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은행권의 상생금융 상품은 총 70개에 이른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22개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이 11개로 그 뒤를 이었다. 지방 은행 가운데서는 올해 안에 시중은행 전환을 예고한 DGB대구은행이 6개로 가장 많은 관련 상품을 내놓은 것으로 집계됐다. 상생금융은 올 1월 시중은행 중 하나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금리 인하 등을 위해 231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현재 카드사와 보험업계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상생금융 상품 중 일부는 이용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저조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중하순 연체이자를 납부한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납부한 이자만큼 원금을 깎아주는 ‘연체이자납입액 원금상환 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출시 당시 우리은행은 1년 동안 4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했지만 실적이 저조해 관련 통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어 수혜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상생금융 상품으로 공시된 상품 중 일부는 상생금융 방안 발표 이전부터 혜택을 주고 있던 상품으로 확인됐다.

‘지원 금액 뻥튀기’ 논란도 벌어졌다. 여신금융 업계에선 6월 신한카드(4000억 원)와 우리카드(2200억 원)에 이어 7월 현대카드·현대커머셜(6000억 원)이 각각 수천억 원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발표했다. 시중은행이 1000억∼2000억 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자본 규모가 비교적 작은 카드사의 지원 금액이 오히려 더 컸다. 이는 소비자들의 실제 혜택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대출 원금을 기준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실제 지원하는 이자 금액은 회사별로 적게는 수십억 원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올 상반기(1∼6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거둔 이자 수익만 20조 원을 웃돌자 은행권의 상생금융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올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가운데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6일 “최근 이탈리아에서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다는 기사가 있었다”면서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은행산업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연체율 상승 등으로 하반기(7∼12월) 실적을 담보할 수 없는 시중은행에선 불편한 기류가 감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공기업도 아닌데 당국의 압박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권에선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차에 따른 이익)을 줄여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금융당국에선 압박으로 은행들이 느끼지 않게 상생금융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