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화가 겸 배우 겸 음악인이 펼쳐놓은 “듣도 보도 못한 쑈”

입력 | 2023-08-07 03:00:00

내달 1∼3일 ‘백현진 쑈: 공개방송’
김고은-장기하-한예리 등 20명
낭독하다 콩트하며 무대 들락날락
쇼트폼 같은 20개 쇼, 80분 질주



‘백현진 쑈: 공개방송’의 특이점 중 하나는 공연 현장을 영화감독 박경근 씨가 직접 촬영한다는 점이다. 백현진은 “무대는 통상 배우의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공개방송에선 카메라맨이 객석을 치고 들어가 관객을 기록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공연에 접목시켜 봤다”고 설명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무대 위 볼품없는 냉장고 하나가 덩그러니 웅웅댄다. 그 옆에 무심히 선 배우는 토막글을 소리 내 읽기도, 콩트를 벌이기도 하며 80분간 이어달리기를 한다. 짧게는 2분, 길게는 7분 길이의 쇼트폼 같은 20개의 쇼가 서사적 맥락 없이 연잇는 공연은 언뜻 낯설다. 그러나 어릴 적 책 귀퉁이에 그린 낙서를 빠르게 넘기던 놀이처럼 관객 마음에 잔상을 새겨놓는다.

다음 달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23’ 중 ‘백현진 쑈: 공개방송’이 공연된다. 배우 김고은, 가수 장기하 등 소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든 톱스타들이 출연 배우로 총출동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과 미술감독, 출연까지 두루 맡은 아티스트 백현진(51)을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재밌어하고 잘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KM갤러리 소속 화가인 백 씨는 드라마 ‘모범택시’(2021년)의 박양진 회장 등 강렬한 악역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해 배우로서도 눈도장을 받았다. 음악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또 전설적인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1940∼2009)의 2003년 내한공연 ‘마주르카 포고’ 에선 그의 음악이 안무곡으로 사용됐다.

이번 공연에선 단막극과 낭송을 비롯해 무대 소품으로 설치미술 작품을 활용하는 등 여러 장르를 빌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일 뿐, 진보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누가 우월한지 끝없이 비교하는 사회에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형식은 독특하지만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배우 한예리와 코미디언 문상훈 등 이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사람만 총 20여 명에 달한다. “주어진 제작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인 이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모였다. 출연진은 장면을 들락날락하며 연기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그동안 캐스팅 타율이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이번엔 많이 까였어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했죠. 작품이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오케이’한 고마운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괴짜’ 대접을 받는 백 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재미’다. 최근에는 재미로 밴드 활동명을 백현진씨에서 ‘벡’현진씨로 바꿨다. 그는 “20, 30대까지만 해도 별명이 ‘홍대 염세왕’일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고자 훈련했다”며 “꾸준히 귀동냥, 눈동냥 하며 예술적 영감을 찾는다”고 고백했다.

“1995년에 처음 공연했을 땐 다들 ‘저 인간 뭐냐’고 했어요. 제 색깔대로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좋아해 주네요.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과거의 저처럼 오랜 무명에 놓인 좋은 ‘일꾼’들과도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4만5000∼5만5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