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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공천’[오늘과 내일/정연욱]

입력 | 2023-04-14 21:30:00

與, ‘검사 50명’ 공천설 괴담으로 뒤숭숭
과감한 혁신 공천으로 반전 기회를 잡아야



정연욱 논설위원


22대 총선을 1년 앞둔 여권 주변은 벌써부터 뒤숭숭하다. 4년마다 벌어지는 공천 시즌을 노린 온갖 괴담이 나돌고 있어서다. 검사 50명 공천설을 비롯해 다선 중진 A, B 의원은 무조건 물갈이 대상이라는 등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다. 대통령실이나 여당 지도부가 아무리 “사실무근”이라고 해도 속수무책이다. 원래 그럴듯한 개연성에 살을 붙이는 게 괴담의 속성이니 공천이 끝날 때까지 그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럴수록 사람들은 대통령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권의 권력추가 여당 지도부보다는 대통령에게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실이 적극 나섰다는 기시감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이 정파를 초월한 중립지대에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역대 대통령들은 일정 정도 공천 지분을 행사해 왔다. 보수-진보 가리지 않았다. 3년 전 21대 총선에선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이 상당수 여당 공천을 받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처럼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소통이 원활하면 큰 문제는 없지만, 신경전이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는 끝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정면충돌했다. 그 결과는 야당 분열로 180석 압승할 거라는 예상을 깬 참패였다.

대통령의 공천 지분은 퇴임 후 안전판까지 내다본 포석이다. 퇴임 후도 안심할 수 없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사람만 확실히 챙기면 자신을 끝까지 뒷받침해줄 거라는 기대는 근시안적이다. 관건은 민심이다. 민심이 등 돌리면 그렇게 믿었던 의원들도 버티지 못한다. 노무현의 탄핵 역풍 덕분에 대거 배지를 단 ‘탄돌이’들이 노무현 정부 지지율이 급락하자 먼저 노무현 청와대와 선을 긋지 않았던가.

공천은 시대정신, 정권의 비전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실질적 무기다. 비전·정책을 백 번 역설하는 것보다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신망 있는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진영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확장을 위해서라도 파격 공천을 주저해선 안 된다. 필요하다면 삼고, 사고 초려도 해야 한다. 문재인이 야당 대표를 하던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청와대를 떠난 조응천을 영입하기 위해 집요하게 문을 두드렸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김영삼(YS) 정권 3년 차인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자당은 참패했다. 간판인 서울시장 선거에선 여당 후보가 2위도 아닌 3위로 밀려났고, 서울 25개 구청장 중 서초-강남만 겨우 건졌다. 집권동맹이었던 김종필 세력이 이탈하면서 등 돌린 민심이 YS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이듬해 4월 총선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과감한 변화로 국면 전환에 나섰다.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YS와 등진 이회창, 박찬종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보수진영과 물과 기름 사이였던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민중당 3인방까지 전격 영입했다. ‘이기는 공천’으로 보수정당이 수도권에서 처음 승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다. 총선 결과에 따라 두 갈래 길이 펼쳐질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승부라면 스스로 준비한 인물과 비전을 내놓고 심판받아야 한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반사이익에 기대려는 꼼수는 버려야 한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부응하는 공천이 ‘이기는 공천’이다. 괴담은 괴담에 그쳐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