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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장원재]나이지리아 4남매의 비극

입력 | 2023-04-07 21:34:00

열악한 환경, 반복된 전조에도 못 막은 비극
이주민에 최소한의 삶 보장 함께 고민해야



장원재 사회부장


4남매의 비극이 시작된 곳은 현관 앞에 있던 멀티탭이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3시 반경 TV와 냉장고가 연결돼 있던 멀티탭에서 발생한 스파크는 금세 불길로 번졌다. 아버지(55)는 연기 속을 뚫고 빠져나와 구조를 요청했지만 안방에서 자던 네 남매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시의 한 장례식장에선 이들 남매의 발인식이 열렸다. 탈출 과정에서 양발에 화상을 입은 아버지는 휠체어에 탄 채 내내 침통한 모습이었다. 막내딸(2)을 던진 후 본인이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친 어머니(41)는 보조기를 찬 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연신 아이들 이름을 불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번 사고를 되짚어보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사고를 당한 나이지리아인 가족 7명은 21㎡(약 6.4평) 크기 빌라에서 지냈다. 다섯 남매가 2∼11세라는 점을 감안해도 1인당 1평이 채 안 되는 면적이다. 서울 시내 고시원 평균이 7.2㎡(약 2.2평)라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이 가족만 특별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빌라에는 비슷한 면적의 집에 나이지리아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총 11가구, 41명이 거주했다.

더 안타까운 건 전조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 가족은 2021년 1월에도 지내던 반지하 집 벽면 스위치에서 불이 나 집이 전소되고 둘째 아들이 화상을 입었다.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비를 해결했지만 이후에도 스프링클러 없는 좁고 노후화된 안산 일대 빌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본보 기자에게 “예전에도 멀티탭에서 불꽃이 난 적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고 했다. 이들 가족은 2017년 2월부터 모든 주택에 소화기와 화재경보기가 의무화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화재를 방지하거나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안산소방서가 화재 발생 2주 전 재난 취약계층에게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남의 얘기였다.

불법체류자가 아니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망에서도 배제됐다. 15년 전 한국에 온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에 중고 물품을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최근 벌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중 내국인이 적어도 1명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2년 전 사고로 화상을 입은 둘째는 자폐성 장애가 심했지만 적절한 교육이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학교도 못 간 채 방치됐는데, 외국인이라 의무교육 대상도 아니었다. 이들 가족을 아는 한 지인은 “둘째가 자폐 때문에 집에 있으니 어머니가 다른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큰딸(11)이 학교를 쉬고 둘째를 돌보곤 했다”고 말했다. 큰딸과 셋째 아들(5)은 이주민 공동체에서 후원금 등으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이번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긴 쉽다. 2년 전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럴 경우 유사한 비극은 어딘가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이민청을 설립한다며 한창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고학력 엘리트 이민자만 곶감 빼먹듯 받아선 인구를 보전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 누군가는 한국 사회의 미래와 보편적 인권 보장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당국자가 나이지리아 4남매의 비극을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늦었지만 글을 남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