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응급환자 ‘표류’ 막으려 의료진 분투… 영유아 ‘출장 수술’도 불사

입력 | 2023-04-05 03:00:00

제주 심장환자 데려오려 헬기 동승
임시병상 만들고 단톡방 병상 수배
“의료진 헌신만으로 더는 못 버텨”



주민호 양산 부산대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제주도에서 치료 받던 심장이식 환자를 헬기를 이용해 경남 양산시로 이송하고 있다. 응급 수술 의사가 부족한 탓에 주 교수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주로 ‘헬기 출장‘을 간다. 양산 부산대병원 제공


주민호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헬기를 타고 제주도에 간다. 심장 이식 환자를 데려오거나 뇌사 장기 기증자의 몸에서 심장을 적출하기 위해서다. 기증자의 몸 밖으로 나온 심장은 환자에게 4시간 안에 이식해야 하는데, 제주도에는 심장 이식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 ‘헬기 동승’은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근거가 없어 진료비도 청구할 수 없지만, 주 교수는 “수술을 못 받으면 죽을 환자라서 우리가 간다”고 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국내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를 심층 분석한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를 보도했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를 막기 위해 현장 의료진들은 고군분투하며 응급의료의 공백을 메우거나 사명감으로 수술실을 지키고 있었다.


● 의사 부족해 응급환자 진료하러 출장

주 교수는 응급수술이 많아 엿새에 하루꼴로 병원에서 밤을 보낸다. 고된 업무 탓에 젊은 의사들의 충원이 어려워, 이 병원 흉부외과에는 전공의가 1∼4년 차를 통틀어 딱 1명 있다. 주 교수는 “떠나간 후배도 의사다. (업무) 환경이 나아지면 돌아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영유아를 수술하는 의사도 부족하다. 장혜경 경희의료원 소아외과 교수는 같은 의료원 소속인 강동경희대병원을 오가며 응급수술을 하는 ‘두 병원 살림’을 한다. 숙련된 소아외과 교수가 전국에 30여 명뿐이기 때문이다. ‘출장 수술’이 일상이 된 이유다. 수술 의사 부족을 남은 의사들의 희생으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장 교수는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기는 제 때 수술을 받으면 건강하게 자란다. 그 모습을 보며 얻는 보람이 커서 힘들어도 수술실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 임시 병상 만들고, 단톡방에서 빈 병상 찾아

응급환자가 표류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중환자실 부족이다. 중환자실은 인력과 장비가 많이 들어 여러 병상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난다. 현장 의료진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시 병상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그랬다. 센터 중환자실 병상 40개가 가득 찼지만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하자 의료진이 임시 병상에 급히 생명유지 장치를 준비시켜 환자를 살렸다.

부족한 수술 의사를 환자와 연결해줄 정부 시스템마저 제 역할을 못 하자 의료진들은 개인 카톡방에서 빈 병상을 찾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생후 6개월 이모 군이 호흡 곤란 증세로 인천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았을 때가 그랬다. 당장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해 인근 병원에 2시간 동안 전화를 돌렸지만 전부 이 군을 받아주지 않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응급실 의사들이 카톡방에서 정보를 교환한 끝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이 군을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임시방편으로 버티기에는 응급의료 공백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장 교수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걸 지켜보는 보람으로 버티고 있지만, 때로는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히어로콘텐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