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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 “‘Hakwon’ 컬처, ‘위크엔드 파더’ 바꿔야 출산”

입력 | 2023-04-04 03:00:00

[저출산 고령화 적응 사회로]
〈5·끝〉 외국인이 본 한국의 저출산




“아이들에게 ‘How are you today?(오늘 어때?)’라고 물었을 때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한국 아이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저 학원 가야 해요’, ‘오늘 학원 3개 가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 애덤 돈 씨(50·미국)는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돈 씨는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할 선택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이런 추세를 반전시킬 만한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발표한 대책도 대부분 기존 정책을 보완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동아일보는 저출산의 원인과 해법을 외국인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자 지난달 23∼29일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심층 인터뷰했다. 직업을 갖고 있어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아이와 부모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서울시교육청 소속 원어민 교사 16명이 대상이었다.


● “한국은 ‘열 살까지만’ 아이 키우기 좋아”

외국인들은 ‘수능(K-SAT)’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한 과도한 경쟁과 비싼 ‘학원 문화(Hakwon culture)’,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한국은 이미 태어난 아이조차 행복하게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고 봤다. 이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고 반문했다. 주한 외국인은 부모보다 아이 시점에서 저출산 현상을 바라본 셈이다.

이들이 본 한국은 한마디로 ‘아이가 행복할 수 없는 나라’였다. 생후 17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알렉산드라 바르 씨(31·미국)는 “한국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단,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만”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건강보험 제도가 잘돼 있고 어린이집 비용도 정부가 전부 지원해 준다는 점이 좋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이 심해져서 아들이 중학생 때부터는 학원을 다니면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혼인 스카일라 케터링 씨(30·미국)도 “아이를 낳게 된다면 초등학교까지만 한국에서 보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다니게 하고 싶다”며 “한국의 시험에 대한 심한 압박과 경쟁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토머스 앨런 던라비 씨(41·미국)는 “한국에는 이웃과 자신을 비교하는 ‘옆집(Yeopgip) 바이러스’가 있다”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은 자녀들이 어떤 학원과 유치원에 다니는지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규모는 26조 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 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7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수당 등의 정부 지원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아도 결국 학원비로 다 쓰인다면 체감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서 뚜렷한 사교육비 절감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저고위 대책에서도 “수준 높은 방과 후 프로그램 제공 등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상반기 중 마련하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개빈 이스턴 씨(45·영국)는 “영국에선 사교육이 불필요하다”며 “고등학교 시험이 (한국과 달리) 암기를 통한 객관식 시험이 아니라 2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을 쓰는 형식이라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아빠는 ‘주말 아빠(Weekend father)’

외국인들이 꼽은 또 다른 한국의 저출산 원인은 붕괴된 부모들의 워라밸이었다. 16명에게 국내 저출산 정책 5개 분야(의료비, 현금, 보육, 일·가정 균형, 주거 지원) 중 가장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물었을 때 ‘일·가정 균형’(7명)을 1위로 꼽았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현재 자녀가 없는 A 씨는(37·미국)는 한국인 직장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된 한국 아빠의 모습을 ‘주말 아빠(Weekend father)’, 혹은 ‘가끔 보는 아빠(Visiting father)’라고 표현했다. 평일에 한국 아빠들은 자녀가 잠든 아침에 출근해, 자녀가 잠든 늦은 밤 귀가한다는 것이다.

A 씨는 “직장 동료들이 자주 ‘아이를 낳지 말고 그냥 자유를 즐겨라’라고 한다”며 “만약 아빠와 아이가 함께할 시간이 더 많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아이를 가지는 데 열린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도 출산의 걸림돌이라고 꼽았다. 샐리 우 씨(30·미국)는 한국에서 여성 교사가 출산휴가와 방학 때문에 결혼 상대로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는 “미국에서는 그런 이유로 교사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다른 직장인들도 교사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혜택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연구위원은 “한국의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제도 자체만 놓고 보면 유럽 국가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실제로 직장에서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이행력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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