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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밥 먹었니?”…전국 보육원에 갈비 보내주는 이모 [따만사]

입력 | 2023-03-09 12:00:00

비영리단체 ‘52패밀리’ 이지남 대표
보육원 아이들 돕다 넷째 입양까지




52패밀리 이지남 대표.

이지남 ‘52패밀리’ 대표는 2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시작은 2021년 5월이었다. 이 대표는 ‘어린이날’이 다가오자 문득 ‘보육원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세 아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부모 없이 어린이날을 보낼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더라”고 말했다. 마침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그는 자신이 판매하는 갈비 수익금을 보육원에 보내겠다고 구독자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왔다. “왜 좋은 일을 혼자서 하세요?”라는 반응이었다. 구독자들은 자신들도 돕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냈고 그렇게 1억 5000만 원가량이 모였다. 덕분에 이 대표는 자신과 연락이 닿은 전국에 있는 보육원에 갈비 등을 보낼 수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도 온정을 이어나갔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돼 선물을 보내준 것이다. 그는 “보육원 아이들은 보통 주는 대로 받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은 받기가 어렵다”며 “그래서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적으라고 한 뒤 후원자들과 공유해 아이들에게 선물했다”고 말했다.

“받은 아이들도 기뻐했지만 선물을 준비하는 분들도 굉장히 행복해 하셨어요. 보육원 이야기를 들은 어떤 아이들은 자기 저금통을 주섬주섬 가져와 ‘친구들한테 주고 싶다’고 하거나 어떤 분은 보육원에서 자라신 분인데 추운 겨울에 은행까지 가셔서 돈을 보내신 후 ‘옛 시절이 생각났다. 너무 고맙다’며 우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지난해에는 전국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체육대회를 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보육원 밖을 나가지 못한 아이들은 오랜만에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때가 되면 제철 과일이나 갈비 등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보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대표는 ‘좋은 일에 사용해달라’며 계속해서 들어오는 후원금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걸 깨달았다”며 “제가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면 이런 나눔이 지속되겠다 싶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52패밀리’가 만들어졌다.

‘52패밀리’는 전국 229개 보육원에 있는 9265명(2022년 기준)의 아이들과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동·청소년이 모여 있는 595개 그룹홈, 그리고 200여 명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먹거리 후원을 하고 있다. 모인 금액은 100% 아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52패밀리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밀키트를 보내주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보육원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받고 싶은 선물을 준비한다. 52패밀리 제공.




사회 나온 보육원생들 끼니 챙기고 법률 지원
보육원 아이들을 챙기다 보니 이 대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년이 되어 보육원을 나가게 된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향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이들은 위험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다. 이 대표는 이런 청년들에게 항상 곁에 있어 줄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밥부터 챙기자’며 밀키트를 보내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

이 대표는 “자립 준비 청년들 중에는 세상을 모르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며 “자립금 등 받은 돈을 아무 데나 써버리는 경우도 많고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이용해 도움을 주는 곳만 쫓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미래는 불 보듯 뻔하지 않나. 그런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밥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식사만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밀키트를 신청한 청년들은 후원자들과 ‘이모·삼촌’ 관계를 맺게 된다. 후원자들은 청년들의 식사가 배달되면 ‘밥은 먹었니?’라고 문자메시지로 묻는가 하면 요리법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100명으로 시작해 이제는 200명이 넘는 청년들의 식사를 챙기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300명 정도로 늘어난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다 보니 이들의 건강이 좋아졌다. 그보다 더 나아진 것은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처음에 ‘밥 먹었니?’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어떤 청년은 그냥 ‘네’라고 보내거나 아예 답을 안 하기도 했어요. 보육원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네’라는 한 글자를 보내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몇 달간 꾸준히 밥을 보내고 연락을 하니 이제는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이 대표는 앞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법률 상담, 의료 지원 등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후원자 중 멘토를 선정해 이들에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 대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사회에 나와 속수무책으로 사기를 당하거나 아파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공장에 취직했는데 공장주가 ‘사람이 신용이 있어야 한다’며 신용카드를 만들게 한 후 현금서비스를 받게 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있고, 출산했지만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런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평생 가족’이 돼주고 싶어”

이 대표는 이런 봉사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아이들에게 평생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더 가족 프로젝트’였다. 자립준비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후원자들 중 자원하는 이들은 보육원 아이들의 이모·삼촌이 된다. 아이들은 주말 등에 이모·삼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후 명절이나 방학도 함께 보낼 수도 있다. 일반적인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이 대표는 “특별한 일은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가거나 집밥을 먹는 등 우리가 늘 하는 것들을 하는데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아이들이 마트 등에 갈 일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사회를 조금씩 알아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육원 아이들은 ‘가족’이라고 하면 매일 행복하고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같이 살다 보면 부모한테 잔소리도 듣고 형제끼리 싸우기도 하지 않나. 가끔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일들도 겪어야 사회에 나왔을 때 생기는 갈등 등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보육원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어 가정에 대한 ‘판타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육원 생활을 했던 아이들 중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부부 갈등으로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낳은 아이를 다시 보육원에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하고요.”

이 대표도 역시 이모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지금의 딸 하윤 양(가명·5)을 입양하기도 했다.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악을 썼고 하윤 양의 웃는 모습을 보기도 어려웠던 이 대표는 그런 하윤 양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집에 돌아와도 늘 생각이 나 입양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첫째 아들은 “바쁘고 힘든데 왜 사서 고생을 하나”며 입양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 하윤 양을 가장 예뻐하는 것은 첫째 아들이다. 이 대표는 “입대한 큰아들이 휴가 때마다 말도 잘 듣고 온화해지는 하윤이를 보며 놀랍게 생각하더라”며 “지금은 누구보다 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우리 첫째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대표는 ‘52패밀리’를 하며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년 동안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천사’ 후원자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들 덕분에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게 돼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저와 제 후원자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지난 2년간 있었던 일을 보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름도 없는 조그마한 단체지만 계속해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으며 봉사하고 싶어요. 그중에 한 아이라도 삶이 변화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